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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버리지, 마요.”
떠나는 연인에게 하는 호소가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의 폭력적 강요도 아니었다. 그처럼 절박하게 발화되는 말을 은영(28)은 들어본 적 없었다.
“물, 좀.”
“도저히 컵을 집을 수 없다”며 그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빨리 와서 물을 달라”며 거듭 번호를 눌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물컵을 두고 계속 1.1.9를 눌렀다.
그가 몸의 기능을 버리고 있었다.
평생 버림받은 사람이 다시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버리고 있었다. 사람은 병에 걸렸을 때보다 버림받았을 때 훨씬 치명적으로 아프다는 사실을 그가 온몸으OCI 주식
로 표현하고 있었다. 약과 의술로도 치료하지 못하는 절망 앞에서 의료의 역할이 무엇인지 은영은 자문했다. 병원에서 환자를 만났을 땐 알 수 없었던 ‘병의 조건들’이 보였다. 정답인 줄 알고 따라왔던 길을 스스로 버린 뒤에야 은영은 자신만의 질문과 만날 수 있었다. 춥지만 뜨거운 겨울을 보내며 발견한 질문이었다.
“야, 이 동네 좁아. 병원온라인증권수수료
고발한 애란 거 알려지잖아? 너 어디 가서 취업 못 해.”
첫 직장이었던 종합병원 팀장이 겁을 줬다. 의사와 약사에겐 꼬박꼬박 주는 월급을 간호사나 응급구조사들은 언제 받을지 몰랐다. 급여명세서는 100% 지급했다고 매달 거짓말을 했다.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한 뒤 그 말이 날아왔다.
“좋은 간호사가 뭔 줄 알아?엔톡
일 잘하는 거? 똑똑한 거? 다 필요 없어. 입이 무거운 거야.”
부당함을 내면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부를 결심하는 순간 많은 것을 버릴 각오(☞10회 ‘전설을 끊던 순간’)를 해야 했다.
“너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
두번째 병원에선 선배들이 돌아가며 다그쳤다. 화장실도 보고하고 가야 했다. 원FX외환거래
장의 커피를 타게 했고 원장의 책상을 닦고 수건과 옷까지 빨게 했다. 환자 앞에서 즉석 시험을 보기도 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달 사이 체중이 10㎏ 빠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퇴사 이유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썼다. 기록이라도 남겨야 했다.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종목추천
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포고령 1호 5항)
떠난 것은 병원이었지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은 아니었다. 위계가 덜한 외국의 의료기관을 찾아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일’이 터졌다.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공부하던 중 가족 대화방에 비상계엄 소식이 올라왔다. 문자 소리에 잠을 깬 할머니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은영은 몰랐던 가족사를 알게 됐다. 1980년대에 사회운동을 하던 이모와 삼촌이 어느 날 사라졌다. 기무사(12·3 내란에 깊숙이 관여한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안 할머니가 그 앞에서 “내 자식 내놓으라”며 “데모”를 했다. 가족을 잃거나 빼앗긴 사람들과 대책위 활동도 했다. 소멸한 줄 알았던 공포가 부활한 악령처럼 일어나 할머니를 불안에 빠뜨렸다. 아빠가 대화방에 글을 남겼다.
“그래도 내일 일상을 살아야 하니 안정 취하고 자자, 굿나잇!”
할머니와 잔 은영이 이튿날 아침 집에 갔을 때 엄마 아빠가 없었다. 은영이 전화로 “어디냐”고 물었다.
“국회 앞이지.”
“할머니 안심용 문자”를 올려두고 가족들은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았다. 아빠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5·18 당시 소년이었던 아빠는 소설(한강 ‘소년이 온다’) 속 소년처럼 중학생 친구의 시신을 찾아 상무관을 헤맸다.
은영도 위협을 느꼈다. “나를 보호해줄 거라 믿었던 국가”가 “처단”이란 단어를 썼다. 사직 전공의를 겨냥한 엄포였고 이유는 달랐지만 은영도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이었다. 은영은 현장으로 ‘복귀’했다. 병원으로 복귀하진 않았다.
‘탄핵 집회 의료 부스’(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주최)에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준비 모임에 갔더니 간호사는 은영 혼자였다. 간호계 조직의 책임을 떠맡았다. 간호사 오픈 채팅방과 전국의 간호대에 홍보하며 지원을 청했다. 사흘 만에 200여명이 모였다. 사비로 구입한 의료 물품을 들고 지고 매일 부스로 나갔다. 접수하고, 진료하고, 응급처치를 했다. 집회 대오를 살피며 저체온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시민이 쓰러졌어요. 의료진 계시면 앞으로 나와 주세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사회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은영과 의료진들이 달려나갔다. 한 남성이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광장엔 공황장애와 기저질환을 가진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밀집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들이 탄핵 집회에 나왔다. 그만큼 그들에게도 간절하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그 간절함으로 일어섰던 몸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왔다. 쓰러진 남성에겐 뇌전증이 발작했다. 은영과 동료들이 응급처치를 하며 둘러쌌다.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었다. 병원으로 이송돼 안정을 찾은 그가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왔다. 은영 등이 언론사에 연락해 바로잡았다.
“여기까지 오는 거 정말 두려웠는데요.”
철야 집회가 있던 날 부스 앞에서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옆엔 추위와 복통, 관절염으로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왔던 그들이 의료 부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탄핵 찬성 쪽까지 뚫고 왔다.
“용기 내서 왔습니다. 도와주세요.”
할머니에게 약을 주고 난로 앞에 앉아 몸을 녹이도록 했다. 조용히 불을 쬐던 두 사람이 “저쪽에도 아픈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부스 안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의료엔 편이 없다”는 의견을 낸 은영이 동의하는 간호사 두명과 ‘경계’를 넘었다. 경찰이 설정한 충돌 완충 구역을 비무장지대처럼 지나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어묵 국물에 의지해 버티고 있던 고령의 참가자들이 “드디어 우리 쪽에도 의료진이 나왔다”며 반가워했다. “어느 교회에서 왔냐”고 묻는 그들의 체온을 재고 비상약을 나눠줬다. 둘로 쪼개진 하나의 공간을 오가며 은영은 자신이 있어야 할 ‘의료의 현장’이 어디인가 고민했다. 그 현장은 ‘환자를 기다리는 병원’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나온 뒤에야 은영은 ‘얼굴 없는 환자들’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또렷한 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그즈음 눈에 들어온 것이 의료협동조합의 구인 공고였다. 첫 출근 날 목격한 새 직장(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은영이 “처음 접하는 병원”이었다. 일반 성인은 물론 영유아, 장애인과 독거노인, 수급자, 성소수자 등이 불편과 편견 없이 진료를 받았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청소도 도왔다.
그리고 ‘또 다른 광장’이 있었다. 병원에도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 진료였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삶의 곤란들이 ‘환자들의 자리’에 있었다.
가난한 환자들에게 폭염은 폭력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집에 들어가면 은영은 차가운 물부터 따라주며 끝까지 마시게 했다. 더위에 녹아버린 음식들을 치우고 에어컨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관을 수소문했다. 척추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대소변을 정리하고 밥을 챙겼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안엔 “증상 너머의 사람”이 있었다. 그를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지”가 보였다. 환자들에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매일 야근을 해야 했지만 “다 상쇄됐”다. “예전처럼 스트레스로 지치는 게 아니라 환자에게 에너지를 쏟느라 기분 좋게 지쳤”다. “그럴수록 내 환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호학을 공부하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감각이 돌아왔다.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염전의 강제노동에서 벗어나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던 그가 활동지원사의 응원을 받아 탈시설했다. 자립생활을 하며 그는 행복해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여행도 다녔다. 급격히 달라진 건, 의지했던 활동지원사가 그만두겠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다시 버려졌다고 받아들인 그가 마음을 놓아 버렸다. 걷는 법을 잊고 누워 지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물컵 움켜쥐길 포기하고 “제발 와서 물을 달라”며 119에 간청했다. 안타깝고 놀라웠다. 한 사람의 회복과 붕괴에 약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일지 모른다고 은영은 깨달았다.
의료인들은 ‘환자를 본다’고 했지만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부품처럼 흘려보내선 환자들을 볼 수 없었다. 시간을 들여 사람을 보는 것이 관계였다. 관계없는 진료는 ‘돌보는 의료’로 나아갈 수 없었다.
“아직 젊으니 더 넓은 곳에서 전문성을 기르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은영은 그의 말을 떠올렸다.
“나, 버리지, 마요.”
누군가 떠나서 아픈 “내 환자들”을 은영은 떠날 수 없었다. 미래의 내 자리는 여전히 이곳일 거라고, 전문성은 그들 곁에서 길러질 것이라고, 은영은 믿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이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