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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 필사하다가 전체를 옮겨 적을 것 같아 결국 구매한 책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여러 번 울린 책이며, 삶이 힘들 때 단순한 위로가 아닌 힘을 실어준 책이다. 독서 모임마다 이 책을 추천한다.
프롤로그부터 밀도 있게 한 땀 한 땀 쓴 것이 드러난다. 많은 작가가 프롤로그에 공을 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작가가 얼마나 힘을 실었는지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여자, 엄마, 노동자라는 집합명사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고유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명사로서의 삶을 지켜 내고자 발버둥 쳤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이제까지 그저 집합명사로서만 살았다. 그렇게 살아왔음이 씁쓸하다. 나만의 고유한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뛴 경주마였음을 고백한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 릴게임꽁머니 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9쪽)
글을 쓰면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길 바라는 욕심도 있었다. 말도 안 되지만, 힘들 때는 그런 마음도 들었다. 내 생각이 어디서 꼬였는지 불행의 이유라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수확이라고 생각한 릴짱 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이며,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맞다. 글쓰기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날 기회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데 글쓰기라는 장치를 통해서 나를 세속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는 것들과 잠 바다신2릴게임 시나마 결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라는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 있게 만들어준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쓸모를 강조하는 이 세상에 쓸모없어 보이는 글쓰기는 오히려 나를 진정으로 살리는 "쓸모 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쓸모 있음을 강요당했던가? 조금이라도 쓸모없게 느껴지면 자기학대와 죄책감에 시달 온라인야마토게임 렸는지. 학창 시절 어느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자, 비관해서 자살했다. 전교 상위권에 드는 우수한 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스스로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게 아닐까?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먹는 것 말고 인간에게 진정으로 쓸모 있는 게 있을까? 쓸모없는 것 투성이가 인간 세계이며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글쓰기, 예술 등이 오히려 인간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광고판의 현란한 문구들과 TV에서 무작위로 유포하는 자막들은 유혹한다. 그것은 하나같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 경쟁과 출세와 소비를 촉구하고 재생산하는 집요한 언어였다. 삶의 가치라는 고귀한 물음을 봉쇄하고 주변에 있는 타인의 삶에 등 돌리게 하는 말들이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에 대한 통념과 상식은 남들이 만들어진 언어로 구성되었다. 오직 권력 유지와 화폐 증식이 목적인 사장님이 지어내고 발언하고 유포시킨 언어로는, 나 같은 사람의 삶을 솔직하게 담아낼 수 없다." (15쪽)
나도 오랫동안 기득권자의 생각을 내면화하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들의 생각과 글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작가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은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가는 본인을 설명할 말들을 찾고 싶었으며, 본인을 이해할 언어를 갖고 싶었다고 한다. 쓸 때라야 본인으로 살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뼈에 사무친다. 재테크나 피부 관리에 관심이 없고 자식 명문대 보내기를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으며 등단한 '여류 작가'도 아니면서 감히 읽고 쓰는 일을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작가의 자각이 충분히 이해된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나도 우울증이나 각종 정신병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감각이 예민하고 세심한 사람에게 한국에서 "주류 세계"로 살지 않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있어도 없는 존재이자 이 시대에 사라지는 종족'이라는 슬픈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프다' '힘들었다' 등 동어반복적인 관념적 어휘를 피하라고 조언한다. 감정 속으로 달아나고 감정 뒤에 숨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적 검열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증거라고 알려준다. 나 자신을 속이거나 자기 검열이 강하게 작동할 때, 글이 안 쓰이고 이상해진 경험이 있다. 글쓰기나 세상살이나 자기기만이 가장 나쁘다.
억눌린 욕망, 피폐한 일상 같은 고통의 서사를 길어 올리는 학인들에게 작가는 당부한다. 삶에 관대해질 것, 상황에 솔직해질 것, 묘사에 구체적인 것. 뭐라도 있는 양 살지만, 삶의 실체는 보잘것없고 시시하다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상세히 쓰다 보면 솔직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뭐라도 되는 듯이 허세를 떨고 살지만, 삶의 실체는 보잘것없음을 알려주니 속이 시원하다. 삶이 시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삶을 정성스레 상세하게 들여다보며 살면 그뿐인데, 왜 그리 다들 '척'을 하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고민한다고 한다. 관계가 단절되고 영혼이 옥죄는 이 물신주의의 체제에서 가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제정신으로 살아보려는 몸부림으로 여기까지 와닿은 이들과 어떻게 글쓰기를 해나갈 것인가를 말이다. 학인들에게 책을 읽되 '진실한 독해'를 당부한다.
사실에 부합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 부합하는 진실함이다.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저자의 의도에 맞추려 낑낑대지 말고 자기 삶의 구체적인 정황을 떠올리고 접목시키면서 '주관적'으로 읽어달라고 한다. 막상 해보니 굉장히 어려웠다. 이렇게 해본 적이 없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던 "쓸모없음"에 관한 이야기가 본문에서도 또 나온다. 문학에 관해서다.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본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는 상태로 일상이 굴러간다." (95쪽)
위 문장을 독서 모임에서 토론한 적이 있다. 아직 고통을 별로 겪지 않아서인지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꽃길만 걸으면 좋겠지만, 고통스러운 날이 온다면 위 문장에서 위로받길 바란다.
작가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누군가 표현해 주었을 때 덩달아 후련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는 나에게는 그저 고맙고 좋은 책이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삶이 막막한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면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 필사하다가 전체를 옮겨 적을 것 같아 결국 구매한 책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나를 여러 번 울린 책이며, 삶이 힘들 때 단순한 위로가 아닌 힘을 실어준 책이다. 독서 모임마다 이 책을 추천한다.
프롤로그부터 밀도 있게 한 땀 한 땀 쓴 것이 드러난다. 많은 작가가 프롤로그에 공을 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작가가 얼마나 힘을 실었는지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여자, 엄마, 노동자라는 집합명사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고유 오션파라다이스게임 명사로서의 삶을 지켜 내고자 발버둥 쳤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이제까지 그저 집합명사로서만 살았다. 그렇게 살아왔음이 씁쓸하다. 나만의 고유한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뛴 경주마였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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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본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는 상태로 일상이 굴러간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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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누군가 표현해 주었을 때 덩달아 후련해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는 나에게는 그저 고맙고 좋은 책이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삶이 막막한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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