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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인구 1000만 시대, 지금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더스쿠프 넘버링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을 통해 노인이 직면한 현실과 대안을 고찰해 봤다. 1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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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지난 7월 31일부터 탑골공원에서 장기 · 바둑 등을 금지했다.[사진｜연합뉴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종로구청은 지난 7월 31일 탑골공원 주변에 '장기판 금지령'을 내렸다. 국가유산 보호와 시민안전 확보란 명분을 내걸었지만,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책이었다. 그로부터 5영원무역 주식
0여일이 훌쩍 흐른 지금, 장기판이 사라진 탑골공원은 어떤 모습일까. 수십년간 이곳에서 장기를 둬온 노인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12일 탑골공원을 찾아갔다.
탑골공원 정문 '삼일문' 앞 인도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종로구가 8월 12일 시작한 '탑골공원 주변 친환경 보행 개선사업'의 일환이었다. 삼일문 왼편의 돌담을 따라 장기후순위채권
판이 펼쳐져 있던 북문을 향해 걸었다. 노인들로 북적였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장기판이 놓여 있던 자리엔 "탑골공원을 아껴주세요"란 문구의 현수막이 쓸쓸하게 나부꼈다. 그 앞에선 노인 한명이 박스종이를 깔고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인들이 주로 드나드는 북문의 양옆엔 종로구청이 설치한 입간판이 서 있었는데, 경고문구가 가알라딘먹튀
득했다. "탑골공원은 3ㆍ1 독립정신이 깃든 국가유산 사적입니다.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 흡연, 음주가무, 상거래행위 등은 모두 금지됩니다. 위반 시 문화유산법 제101조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참고: 입간판의 내용처럼 현행 문화유산법(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대운하관련주
용에 관한 법률)상 문화유산 관리행위를 방해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우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론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종로구청이 노인들에게 사실상 엄포를 놓은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입간판을 지나 공원에 들어서자 수십명의 노인들이 벤치나 화단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매일 탑골공원을 찾아 장기를 뒀다는 김민국(83ㆍ가명)씨는 종로구청의 조치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시간이 도통 가지 않아서 여기에 나와 사람 만나고 장기 두는 걸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노인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하루아침에 장기판을 없애버리니 서운함이 크다."



[사진｜연합뉴스]


또다른 노인 박철진(77ㆍ가명)씨도 "종로구청에선 사람들이 모이니 소란스럽고 민원이 잦아지니 (장기판을) 없애는 게 편했겠지만, 지나친 행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물론 종로구청도 고충이 적지 않았다.
탑골공원엔 장기를 두는 노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노숙자부터 인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까지 뒤엉키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음주ㆍ고성방가ㆍ노상방뇨ㆍ쓰레기무단투기 등도 빈발했다.
여기엔 뼈아픈 현대사史가 깔려 있다. 탑골공원을 찾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어난 건 1990년대부터다. IMF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당한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노숙자들도 하나둘씩 이곳에 모여들었다. 탑골공원 주변에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는데다, 비교적 저렴한 음식점들이 많다는 점, 지하철 1ㆍ3ㆍ5호선이 모두 지나는 종로3가역과 가깝다는 점 등이 탑골공원을 붐비게 만들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장기ㆍ바둑을 두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탑골공원 주변에선 노상방뇨나 음주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해 왔다"면서 "종로구는 2023년부터 탑골공원 개선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그 일환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해 음주 소란 행위 등에 계도활동을 해왔지만 근절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장기판이 사라진 후 주취자 문제가 70~80%가량 줄었다"면서 정책의 취지가 틀리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 때문인지 종로구청의 조치를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탑골공원 인근에서 13년째 상점을 운영하는 최정만(70ㆍ가명)씨는 "그동안 시끄러운 일도 많았고, 경찰 출동도 잦았는데 장기판을 없앤 후 거리가 조용하고 깨끗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짚어볼 건 있다.
30년 된 장기판을 하루아침에 없앤 결정이 과연 합당한 것이었느냐다. 이는 우리나라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노인 문제' '노인 빈곤'과 맞닿아 있어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 짚어볼 점① 부실한 공론화 = 전문가들은 장기판을 단속하기 전에 노인들에게 충분히 안내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종로구청 측은 지난해 10월부터 계도활동을 해왔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지난 7월에야 장기판이 철거되는 걸 인지했다.
조상미 중앙사회서비스원 원장은 "충분한 기간을 갖고 노인분들에게 정책 취지를 설명했다면 좋았을 듯하다"면서 "탑골공원 외에 바둑을 둘 수 있는 노인복지관이나 재가센터 등을 안내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노인분들의 소외감이 덜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탑골공원에서 600m 거리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도 바둑·장기실이 마련돼 있긴 하다. 하지만 탑골공원에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노인들은 많지 않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이형철(81ㆍ가명)씨는 "노인복지센터 내 바둑·장기실엔 이미 다니던 사람들이 많은 데다 운영시간도 짧다"면서 "공원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짚어볼 점② 노인 여가 욕구 = 종로구청이 노인들의 여가 활동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일례로 탑골공원 장기판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노인들의 여가 인프라란 특성을 갖고 있다. 이곳에 모인 노인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준모 건국대(행정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인분들도 여가 니즈가 모두 다르고 개개인의 특성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노인여가복지시설만으론 수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여성 노인분들보다 남성 노인분들이 노인여가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남성 노인분들이 선호하는 다른 활동이 있다면 양성화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탑골공원 사례에서 보듯 노인들의 자생적인 여가 인프라를 지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탑골공원 인근 종묘광장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종묘광장공원에서도 30년 가까이 수십명의 노인들이 모여 매일 바둑을 두고 있지만 더위나 추위를 막아줄 시설은 아무것도 없다. 탑골공원을 찾았던 이날도 노인들은 모두 화단에 걸터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종묘광장공원에서 만난 노인 정균철(88ㆍ가명)씨는 "여기에 오는 노인들은 모두 70~90대"라면서 "여름엔 아무리 더워도 바둑을 두러 나오고, 겨울엔 영하 3~4도까진 나온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보라매공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정자 아래 장기판이 마련돼 있었지만 더위나 추위를 막아줄 시설은 부족하기만 하다.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마련한 선풍기 몇대가 전부일 정도다. 올여름 서울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이 장기판마저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보라매공원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최민철(82·가명)씨는 "탑골공원 뉴스를 접하고 혹시라도 보라매공원 장기판도 없애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됐다"고 털어놨다.



누군가는 지금이 '노인 여가'에 신경 쓸 때인가라고 힐난할지 모른다. 취업을 못한 청년들이 차고 넘치고, 중장년층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판에, '노인 여가'에 정책적 초점을 맞추는 건 한가한 일이란 거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단견短見이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다. 내년이면 고령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선다. 그만큼 고령화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등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고질적 문제들도 숱하다.
종로구청이 선택한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을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분석해 봐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네 노인들은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에 있을까. 이 이야기는 넘버링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의 고찰' 두번째 편에서 이어나가보자.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