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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도서관에서 뜻깊은 모임이 있었다. 시민 30명 정도가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소셜미디어(SNS)와 게임에 정신 못 차리는 우리 아이가 걱정되어 모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뜬금없이 1848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주의 한 공사 현장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공사 현장의 책임자는 만 25세 피니어스 게이지. 늦은 오후 갑작스러운 폭발 사고로 6㎏짜리 쇠막대기가 날아가 그의 왼쪽 얼굴을 뚫고 머리 윗면 앞쪽으로 빠져나갔다. 쇠막대기는 그의 왼쪽 전두엽 피질(이마엽 겉질) 대부분을 망가뜨리고 25m를 지나 떨어졌다.
놀랍게도 게이지는 이 심각한 사고에서 살아알라딘설명
남았고 건강도 회복했다. 하지만 사람이 달라졌다. 침착하고 성실해 20대 중반에 관리직에 오른 그는 한마디로 ‘망나니’로 변했다. 수시로 욕설을 퍼붓고, 동료를 존중하지 않고, 충동을 참지 못하고,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와의 약속인 계획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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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막대기를 들고 앉은 피니어스 게이지.


결국 게이지는 일자리를 잃고 자기 뇌를 관통한 쇠막대기를 들고 서커스단에서 구경거리가 되어 푼돈을 버는 처지로 전락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뇌의 비밀을 하나둘씩 밝히면서 그 이유일목균형
를 찾아가고 있다. 바로 손상된 전두엽 피질이 문제였다.
전두엽 피질은 이마 쪽에 있는 뇌의 겉 부분이다. 한때 과학자 상당수는 뇌가 아동기 초기에 거의 완성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만 2세까지 성인 뇌 부피의 약 85% 정도가 자란다. 그러니 엄마 자궁 안의 태아 때부터 만 2세가 될 때까지의 환경이 뇌 발달에 정말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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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놀랍게도 뇌는 20대 중반이 되어야 어느 정도 제 꼴을 갖춘다. 특히 뇌에서 가장 늦게 발달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서 주목하는 전두엽 피질이다. 이 부분은 청소년기에 들어가는 만 12세부터(초등학교 6학년 정도) 발달하기 시작해 20대 중반(남성이라면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시기)에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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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뇌에서 가장 늦게 발달하는 전두엽 피질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계획·의사 결정·충동 억제·위험 평가·감정 표현·사회성·언어 등등. 보통 우리가 ‘사람’에게 기대하는 이성적 행동 대부분이 전두엽 피질과 연결돼 있다. 이 부분은 뇌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달라진’ 이유도 깨달았겠다. 전두엽 피질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성 호르몬에 흠뻑 적셔진 10대의 뇌!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눈에 반해서 한 금단의 사랑도, 그토록 애달픈 첫사랑도, 역사 속에서 대의와 혁명을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진 수많은 청년 순교자도 모두 전두엽 피질의 미성숙과 크든 작든 관계가 있다.
10대 초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살아가면서 전두엽 피질이 개인 맞춤형으로 발달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친밀함, 또래 친구와 보낸 시간, 달콤한 성적 충동, 교사의 가르침, 마음을 흔든 책, 눈물을 쏟게 만든 노래와 영화와 드라마 등의 경험이 전두엽 피질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개인 정체성의 중요 부분을 구성한다.
안타깝게도 휴대전화는 이 경험의 다양성을 빼앗는다. 특히 그 안의 SNS는 사람과 사람 간에 직접 관계를 맺는 일을 차단하고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한다.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가짜 이미지에 현혹되어 세상에 힘든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또 현실의 복잡한 관계를 단순화해 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터라고 믿게 만든다. 그 차단과 왜곡의 흔적은 고스란히 전두엽 피질에 새겨진다.
세계 곳곳에서 뒤늦게 10대 청소년의 휴대전화와 SNS 사용을 규제하고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2025년 9월부터 미국 텍사스주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의 등교 시부터 하교 시까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다. 프랑스도 2018년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막고 있다. 2023년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80%가 이 정책에 찬성하며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그래픽=이철원


청소년 정신 질환을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증거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SNS 규제 움직임도 활발하다. 프랑스에서는 2023년부터 15세 미만 청소년이 SNS에 가입할 때 부모 동의를 의무화했고 해당 규제를 위반할 시 기업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한다. 호주는 아예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해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 모든 일이 ‘또렷한 실체가 있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다음 세대를 보호하려는 어른의 노력이다. 어른은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 SNS와 엉겨 붙은 10대 청소년을 한시적으로라도, 즉 전두엽 피질이 발달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떨어뜨려 놓는 일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날 도서관에서 시간 사정 탓에 미처 못한 얘기가 있다. 불쌍한 게이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원래 모습의 일부를 되찾았다. 나중에는 마차를 모는 일자리까지 구했다. 뇌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다. 우리가 지금 다음 세대를 휴대전화와 SNS 등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면, 그들의 뇌와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교수가 쓴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 영문판 표지. 한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보며 '좋아요' 같은 이미지들에 포위돼 있다.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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