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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마을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올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주제는 마을에 얽힌 추억이다.
고계순(79), 김분이(85), 김순이(74), 김야무(88), 마덕선(85), 박임순(84), 손남이(85), 심정선(91) 장석순(82), 추점수(81) 할머니가 마을 추억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할머니들 눈으로 바라본 옛 마을 풍경과 자연이 스케치북에서 화려한 색채로 되살아났다. 그림 뒤에는 그림에 대한 설명도 적었다.
고향이거나 결혼해서 왔거나 할머니들은 반평생 이상 한퇴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마을 역사가 된 할머니들 이야기오락실게임
를 들어봤다.
한퇴마을 할머니들과 통영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26일 종강 수업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첫줄 왼쪽부터 박임순, 고계순, 김분이, 추점수, 손남이, 김야무, 장석순, 마덕선, 김순이 할머니. 둘째 야간선물시장
줄 왼쪽에서 두번째 최혜교 통영수채화협회장, 네번째 김소미 씨. /정봉화 기자
◇할매들 이야기 = 가장 맏언니인 심정선 할머니는 가마 타고 시집오던 날을 그렸다. 할머니를 태운 가마가 꽃길 위에 있는 그림이다.
'나 스무 살 때 사양구(큰 가마를 일컫는 사투리) 타고 시집을 왔다.현대제철주가
분칠하고 연지 찍고 가마를 탔다. 동짓달에 추블짝에(추울 적에) 시집을 왔는데 좋은 날이라고 꽃을 기맀다(그렸다).'
고된 시집살이도 되돌아보니 행복한 순간이 됐다. 그림 속 할머니들은 앳된 새색시들이었다.
'나 어릴 때 시집을 와 아기를 낳아서 아기를 업고 논일 밭일 열심히 했다. 아기를 두디다(등 뒤에) 업고 일을 오리지날릴게임
했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울며는 젖을 먹이고 나서 업고나서 일을 했다. 업디리서(엎드려서) 일을 하다가 아기가 울면 서서 아기도 달래고, 나도 허리도 펴고 잠시 쉬었다. 일은 고데지만(고되지만) 아기가 예뻐서 웃으며 일을 했다.'(박임선)
'나 어릴적 한퇴마을로 시집을 왔다. 우리 시아버지께서는 선비가 돼서 남 글 가르차(가르쳐) 주고 웨이브일렉트로 주식
일은 몬했다(못했다). 그래서로 우리 시아버지는 시골논을 받았다. 신랑하고 나하고 시누이 서이(세 명) 산골짜기 올라가서 신랑은 비료 흧처놓코(흩어 놓고) 여자들은 논을 맸다. 머시(뭣이) 그리 재미따꼬 재잘재잘 이야기했다.'(마덕선)
'사랑하는 우리 영감. 시어메(시어머니)가 독케서(독해서) 맨날맨날 나에게 못되게 굴고 사니 시집살이가 심이(힘이) 들더라. 그래도 영감이 나한테는 잘 대해주고 해서 영감만 보고 살았는데 영감이 몬제(먼저) 하늘 나라로 가고 없어도 나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가끔씩 할매(시어머니)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니한테 나가(내가) 잘해줄께 하던 영감이 보고잡다(보고 싶다).' (김분이)
한퇴마을이 고향인 김순이 할머니는 어릴 적 마을에서 본 '도깨비불'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줬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목욕탕에 간다는 꿈도 생각은 못했든 때였기 때문에 냇고랑에 가서 목욕을 하는데 그날은 좀 많이 어두웠는데 우리가 목욕을 하고 있는 바로 산 위에서 도깨비불이 나타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빤스만 입고 동네 쪽으로 뛰어들어오다가 줄에 미끄러져 엎어졌는데 그때에 도깨비가 따라와서 밀어삐는 줄 알고 너무 놀랬던 추억이 있습니다.'(김순이)
지난해 마을에서 열린 합동 팔순잔치는 할머니들에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줬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팔순잔치. 옛날에는 너무 힘이 들어 생일 밥도 못 묵고 살았는데 작년에 내가 팔순이 되어서 마을 경로당에 나, 옥자, 필자, 세 명을 단체로 팔순 잔치를 해주어서 기분이 하늘로 날아가는 듯했고, 힘들게 살아온 세상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자식들보다 잔치를 잘해주고 축하해주신 모든 사람들께 고맙고 사랑합니다. 우리 미술 선생에게도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그때를 생각하몬 눈물이 나고 정말 기쁩니다.'(추점수)
할머니들이 그림 마무리하는 모습. /정봉화 기자
◇4년째 이어진 그림 공부 = 할머니들은 2021년 이맘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최혜교(68) 통영수채화협회장이 재능 기부로 그림 교실을 열었다. 매주 화요일 열린 그림 교실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통영에서 23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최 회장은 할머니들에게 그림 수업을 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과 보람을 찾았다. 3년 전에는 아예 한퇴마을로 이사 왔다.
최 회장은 "아이들 순수함과 어른들 순수함은 다른 것 같다"라며 "할머니들이 자신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구상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주 든든한 문하생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 노력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림 수업 있을 때는 병원에도 안 가시고 참석하신다"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림 실력이 늘어나니까 올해는 욕심을 내시더라"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과 건강하게 앞으로 계속 그림을 가르치며 남은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3년 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림책도 냈다. 통영시립도서관 지원 사업으로 펴낸 그림책 〈주례야, 너물 캐러 가자〉는 통영 나물비빔밥 요리법을 할머니들 방식으로 담아낸 특별한 책이다.
김순이 할머니까 어릴 때 본 도깨비불을 그린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정봉화 기자
◇지속 가능한 공동체 만들기 = 올해 그림교실은 통영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체분과 사업으로 진행됐다. 지속가능협 운영위원이면서 용남면에서 독립서점 '고양이회관'을 운영하는 김소미(31) 씨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림과 글 지도에 참여했다. 그는 청소년·청년 정책을 비롯해 지역 공동체 활동에 관심이 많아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 씨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감사한 것 같고,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너무 감동 받을 때도 배울 때도 많다"며 "할머니들 추억과 이야기를 모으면 마을의 작은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그리고 쓴 마을 이야기는 오는 11월께 그림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글·사진/정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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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퇴마을 할머니들이 펴낸 그림책 〈주례야, 너물 캐러 가자> . /통영시지속가능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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