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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삽화=신동준 기자


'무료 아동문학교실 수강생 모집'
2007년 여름, 대구 지역신문에 실린 광고가 권영욱씨를 사로잡았다. 쉰에 가까운 나이, 직장생활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던 때였다.
영욱씨는 한때 글 쓰는 삶을 꿈꿨다. 1970년대 고등학생으로 청소년 대상 월간지 '학원'에 투고한 글이 실린 적이 무료충전야마토
있었다. 하지만 졸업하자마자 보험회사에 취업했고, 그 후론 사는 게 바빴다. 그렇게 30여 년, 문학은 멀리 있었다.
'아동' 문학을 생각본 적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돈 한 푼 안 들이고, 직장인을 위한 저녁반까지 있지 않은가. 홀린 듯 광고에 실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개인 휴대폰 번호였다. 연배가 한참 높은 듯한 노인이 전화를 받10원야마토게임
았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녁반 수강생 15명이 다 찼습니다."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래도 좀만 기다려 보세요. 수업 시작하고 얼마 안 가 그만 두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결원이 생기면 전화를 드릴게요." 그는 통화 내내 경어를 깍듯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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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씨는 전화를 받았다. 이듬해 6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강의를 들었다. 문학교실 5기 수강생으로 졸업했고, 동시 작가로 등단했다. 올해 4월에는 동화로 천강문학상 아동문학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밝히며 18년 전 그를 아동문학의 세계로 끌어들인 이를 떠올렸다. "선생님, 이만하면 잘한 거지요? 동화로 상을 받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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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씨는 답을 듣지 못했다. 3개월 전인 2025년 1월 13일, 최춘해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대가 없이 400여 명에게 아동문학을 가르치고 등단작가 100여 명을 배출하는 등 '아동문학의 씨앗'을 잔뜩 뿌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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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평생 교사이자 시인이었다. 1932년 경오리지날 양귀비
북 상주에서 태어나 1951년 19세의 나이로 상주중 부설 초등교원 양성소를 수료했다. 대구·경북 지역 16개 초등학교를 거쳐 1998년 구미시 인동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편을 놓았다.
작품 활동도 왕성했다. 1967년 동시 '겨울 땅속'으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같은 해 '한글문학'에 아동문학가 조유로(1930~2004), 이원수(1912~81)로부터 추천을 받아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결성된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에서 활동했고, 경북 지역 교사인 동시에 아동문학가였던 신현득, 김종상, 이오덕 등과 교류했다. 1967년 '시계가 셈을 세면'을 시작으로 동시집을 16권이나 냈다.



1967년 대구 발전을 주제로 대구시 주최 백일장 시상식을 마친 뒤 모습. 왼쪽 두 번째가 최춘해 작가, 오른쪽 끝이 신현득 작가. 혜암아동문학회 제공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편안하고, 게으른 노후를 원치 않았다. "한평생 '국록'을 먹고살았습니다. 나라에서 이렇게 해주는데, 나도 뭔가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 월급, 퇴임 후 연금을 나라에서 주는 녹봉, '국록'이라 불렀다. 그렇게 맘먹은 게 아동문학강의였다.
강의를 계획했지만, 공간이 문제였다. 도서관, 복지관, 교회 등에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교회에선 "종교 관련 활동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무료 강좌니 공간 대여료를 낼 여력도 없었다.
손을 내민 건 '도서출판 그루'의 발행인 이은재씨였다. 최 작가의 사정을 들은 은재씨가 출판사 문을 활짝 열어줬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2시간씩, 공간 대여료는 물론 냉난방 비용도 일절 받지 않겠다고 했다. 2003년 7월, '최춘해 아동문학교실(현재 혜암아동문학교실)'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첫 수업 올 때 원고지랑 국어사전 갖고 오세요." 최 작가가 내는 첫 숙제는 언제나 그랬다. 원고지는 받아쓰기용이었다. 문학교실 2기 수강생이었던 유병길씨는 처음 받아쓰기했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50점 넘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전부 띄어쓰기 틀리고." 글깨나 쓴다 자부했던 수강생들이 첫날 받아쓰기에 기가 꺾이고, 겸허해졌다.



최춘해 작가가 지난해 7월 혜암아동문학교실 22기 첫 수업에서 받아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혜암아동문학회 제공


두 번째 수업은 '사전 찾기'였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물론, 단어의 장음과 단음까지 구분해야 했다. 시를 쓰는 훈련이었다. 수업은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다. 세계아동문학사, 동시 작법, 동화 작법 등 이론 수업 1시간, 수강생들이 써온 작품에 대한 합평이 1시간이었다. 매주 작품을 한 개씩 가져와야 했고,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최 작가는 합평을 마친 수강생 작품을 직접 채점했다. 동그라미는 '좋다', 엑스는 '이건 아니다'.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꼼꼼히 체크해줬다. 영욱씨는 최 작가의 평가를 여적 기억한다. "이미지가 잘 형성이 되지 않습니다." 문학교실 6기였던 윤별하씨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개성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당연히 많은 시간을 쏟아야 가능했다. 최 작가는 매주 오전 10~12시 오전반, 오후 7~9시 저녁반 총 4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 30~40명이 매주 작품을, 매일 일기를 써왔다. 아들 병창씨는 은퇴 후에도 '일을 사서 하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봤다. "정열을 다 바치셨죠. 하루종일 거기에 매달리셨어요." 최 작가는 이런 생활을 2013년까지, 10년을 이어갔다.
최 작가는 왜 고생을 사서 했을까. 그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아동문학 인구가 늘어나면 세상이 그만큼 맑아지지 않겠어요? 동시를 짓는 사람이 흉악범죄를 저지를 리는 없잖아요. 아무리 사람이 성질을 내고 우락부락해도, 동심으로 돌아가면 그런 게 없어져요." 최 작가가 동시를 쓸 때마다 강조했던 것 또한 "동심을 갖고, 사물에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학 스승, 인생의 스승



제17회 세종아동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생전의 최춘해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인 최춘해'는 어땠을까. 김종헌 문학평론가는 최 작가가 첫 시집에 실은 '자연 공부 시간'으로 그를 설명했다.
'간디스토마는/ 빈혈이 심하고 / 얼굴색이 누렇고/ 온 몸이 붓고...// 맨 앞에 앉은/ 얼굴이 누른/ 결석을 잘하는/ 종복이가 눈알이 동글 동글/ 귀 기울여 듣는다//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종복이를 보고 난 선생님/ 그러나 요사이는/ 의학이 발달해서...(후략)'
기생충 감염병인 '간디스토마'를 설명하던 선생님은 "한 번 걸리면 못 고친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이 병에 걸린 '종복이'가 눈에 들어왔고, 황급히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괜찮다"며 말을 바꿨다. 김 평론가는 "이전 시대 동시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상이나 귀여운 아이들의 이미지를 주로 그렸다"며 "(최 작가는) 반면 실제 생활 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짚었다. 최 작가는 첫 시집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난한 속에서도 비굴하지 말고, 권세에 눈치 살피지 말며, 좀 모자라더라도 내 것을 아끼고 가꾸어 싱싱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습니다."
최 작가는 2021년과 2022년에도 동시집 '엄마가 감기 걸렸어', '말 잘 듣는 아이'를 출간했다. 2022년은 만 90세가 되는 해였다. 영욱씨에게 "요새 젊은 작가들을 못 따라가서 고민이 많다"고 토로할 만큼, 창작을 향한 열정은 말년에도 전혀 식지 않았다.



최춘해 작가가 출간한 동시집 표지 모음. 김성민씨 제공


아동문학을 가르치는 일에도 멈춤은 없었다. 작가가 된 제자들에게 문학교실을 맡겼지만, 매년 첫 수업에는 직접 들어가 받아쓰기를 시켰다. 기수별로 매달 만나 합평 활동을 이어갔고, 아동문학교실 수료생들로 구성된 혜암아동문학회 월례회에도 매번 참석했다. 제자들의 등단이나 작품집 출간은 늘 챙겼다.
제자들은 최 작가가 사람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참어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제자라도, 나이가 어려도 항상 존댓말을 썼다. 문학교실 8기인 김성민씨에게는 "김성민 선생님"이라고, 혜암아동문학회 회장을 맡은 적 있는 영욱씨에게는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전화를 할 때면 "최춘해입니다"라고 소개했고, 문자 메시지 마지막엔 항상 '최춘해 올림'이라고 적었다.
최 작가는 아동문학을 가르쳤지만 제자들은 "인생, 삶을 배웠다"고 했다. 영욱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선생님이 그런 걸 말로 가르치지는 않았어요. 문학적으로도, 문학적인 장치 같은 걸 많이 지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 문학을 하기 위한 자양분을 갖추려면 작가가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죠."
제자들,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사재도 아끼지 않았다. 최 작가는 문학교실을 제자들에게 물려줬던 2013년, 아동문학회 발전기금으로 5,000만 원을 출연했다. 문학공부를 하고 모임을 이어가는데 사용하란 뜻이었다. 택시 한번 타지 않고 매달 받는 연금을 알뜰하게 모아 마련한 돈이었다.
제자들은 그 돈으로 2019년 '혜암아동문학상'을 제정했다. 매년 동시, 동화 부문 신인작가들에게 상금과 함께 상을 수여했다. 최 작가는 2023년 2억 원을 추가로 내놨다. "계산을 하신 거 같아요. 2억5,000만 원이면 1년 이자가 얼마 나오고, 그러면 상금 주는 데 고민할 필요는 없겠구나를 알 수 있잖아요." 제자들은 이렇게 이해했다.

평생회원 100만 원을 남기다
문학교실 10기인 김순란씨는 지난해 11월을 잊지 못한다. 문학회 월례회를 마치고 최 작가를 차로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김 회장 덕분에 내가 잘 다녔어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월례회에 못 나올 것 같아요." 건강이 편찮으셔서 그런 건가. 순란씨는 "겨울에는 좀 힘드시더라도, 봄 되면 저랑 가끔 와요. 제가 모시고 다닐게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불길한 느낌을 영 지울 수 없었다. 순란씨는 집 앞에서 손을 흔드는 최 작가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최춘해 작가가 지난해 11월 16일 차에서 내린 뒤 김순란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순란씨 제공


월례회 참석은 그날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최 작가가 한 달쯤 후 쓰러졌다. 몸을 조금 회복한 그는 퇴원하자마자 문학교실 6기 수강생이자 동시전문지 '동시발전소' 발행인인 신홍식씨를 집으로 불렀다.
"동시발전소 평생회원에 가입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평생회원이 아니었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미안합니다."
동시발전소 1년 정기 구독료는 4만 원, 후원은 10만 원, 평생회원권은 100만 원이었다. 마지막까지 아동문학을 챙기며 후원금을 내겠다고 한 것이다. 최 작가는 평생회원이 된 지 일주일 만에 제자 20여 명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아들 병창씨는 최 작가의 유지에 따라 동시발전소에 100만 원을 입금했다.
최 작가가 뿌린 씨앗은 어떻게 발아하고 있을까. 순란씨는 최 작가와 나눈 예전 대화를 떠올렸다. "선생님께서 초등학교에 근무하실 때 아이들이 글짓기 상을 받고 오면 무척 기뻐하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요?'라고 장난처럼 물었는데 '그렇죠, 좋죠'라고 대답하시는 거예요." 순란씨는 최 작가를 무척 좋아했지만, 성실한 제자는 아니었다. 일기도 잘 안 써갔고, 스스로 글을 못 쓴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최 작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진지하게 글을 썼고, 2019년 등단했다.
영욱씨가 올해 4월 문학상을 받고 "이만하면 저 잘한 거지요?"라며 눈물을 흘릴 때 순란씨도 그 자리에 있었다. "권영욱 선생님처럼 저도 잘 하고 있다는 걸 선생님한테 보여드리고 싶어졌어요." 요즘 그는 다시 동심으로 사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생각을 상상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러다 보니 삶이 즐거워졌어요."



고 최춘해 작가의 생애. 김대훈 기자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 삽화=손영하 기자·챗GPT, 그래픽=김대훈 기자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① 비로소 부고


• 교수, 장관, 회장의 별세만 특별할까…"미처 몰랐던 보통 삶의 비범한 희망"(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09550004945)
• 생면부지 남을 구하려 목숨을 던졌다..."다시 돌아와도 또 도울 사람"(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09570000462)
• 작곡가를 꿈꾼 택배기사...'어느 나라에서도 안 하는 노동'을 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10130002000)
• 가출 그리고 탈출... 꽃 피는 봄, 약속대로 아빠가 돌아왔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10120004296)
• 모든 게 무너진 후, 소소는 '열무와 알타리'를 그렸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09550004732)
•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어?"… 놀란 신부님은 아이들의 '대장'이 됐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310190004994)




② 비로소 부고 Ⅱ


•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010330003849)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