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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이 중국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를 치렀다. 시험은 나흘 동안 치러졌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 고사장 앞에는 꽃다발을 든 학부모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옥 같은 고사장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을 상상해봤다. 대부분은 ‘해방됐다’는 기쁨으로 해맑게 웃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의의로 밝게 웃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무표정하거나 다소 멍한 얼굴로 나왔고, 대성통곡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들도 나올 때 잠시 한 번 ‘씩’ 웃을 뿐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별다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올해 시험문제는 예년보다 유난체리마스터 공략
히 변태스러웠다”며 “성적은 기대하지 마라”라는 말만 했다.(하마터면 지금까지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할 뻔했다.)
아들이 나흘의 중국 대학입학시험을 마친 날
잠시 ‘백수 신세’가 된 아들은 온종일 게임하거나 좋아하는 취미인 대형 퍼즐 맞추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책하자고 해도 “지금은 푹 쉬는 중이니 제발황금성오락실
날 가만히 두라”고 한다. 잔소리 한마디 하려다가 문득 얼마 전 본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주인공 미지가 좋아하는 동창생인 호수가 잠시 백수가 됐을 때 그에게 해주는 말이다. “지나간 일은 생각해봤자 후회뿐이고 닥칠 일은 생각해봤자 불안하기만 하고. 그러니까 뭔 생각이 든다 싶으면 이 뜨개질을 해. 한코 한코 뜨면서동양피엔에프 주식
오늘 하루만 버티는 거야. 그렇게 버티다보면 새로운 일도 생기고. 새로운 일은 안 생기더라도 이 수세미 하나는 생기는 거지.”
그러나 학부모들은 ‘수세미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시험 끝난 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선 매일 ‘슬기로운 백수 시절 보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학 입신라섬유 주식
학 전에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며 (단체 할인을 받기 위해) 함께 운전면허학원에 다닐 아이들을 모집한다는 내용, 입시 실패에 대비해 유학 영어 시험을 함께 준비하자는 제안, 아이들에게 세계관과 식견을 넓혀주기 위해 유럽 여행을 함께 가자거나 각 분야 유명 학자들과 함께 떠나는 테마여행에 참여할 친구들을 모집한다는 글 등 온갖 ‘슬기로운’ 제안이 넘쳐났다. 그매장판
계획들을 다 수행하려면 아이들은 백수 기간에도 ‘수세미 하나’ 뜰 시간이 없을 듯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폭탄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3년 내내 아침 7시까지 등교해 밤 9시까지 학교에서 수감생활을 하듯 지내온 아이들이다. 이제 막 그 감옥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에게 당신들은 또 무슨 인생 계획 타령을 하는 건가. 제발 아이들을 잠시라도 좀 내버려둬라.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공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훌륭한 인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가? 여행도 공부처럼 해야 한다며 유명 학자들 강연을 들으며 배우고 놀라는 당신들의 창의적인 발상에 진짜 진절머리가 난다. 며칠 뒤면 가오카오 성적표가 나올 것이고 곳곳에서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아이들이 나올 것이다. 매년 그러지 않았느냐. 그중에 당신 아이들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제발 잠시라도 숨 좀 쉬게 내버려둬라!”
이 학부모의 글은 단체대화방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 몇 분 뒤 그는 자신이 쓴 메시지를 삭제하고 대화방에서도 탈퇴했다. 한두 시간 뒤 학부모들은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시간당 200위안(약 4만원) 하는 유학 영어 강사 소개글이 가장 핫한 내용으로 떠올랐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책 ‘남들과 다르게 사는 법’(格外的活法). 예스24 갈무리


이제 풀려난 아이들을 잠시 내버려두라
“잉신은 어릴 때부터 최고의 것을 얻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최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최고 대학을 가고, 최고 기업에 들어가, 성과 평가에서 A를 받아야 한다.’ 최고를 얻지 못하면 고통스러웠다. (…)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실력 발휘에 실패해 (국내 명문대 진학에 실패하고) 마카오의 한 대학에 가게 됐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상이 이전에 받았던 교육처럼 노력한 만큼 더 좋은 성과를 얻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소후닷컴 6월13일치 ‘성공으로 정의되고 싶지 않은 Z세대, 샹뱌오에게 보내는 편지’ 기사 중)
이 글의 주인공 잉신은 ‘미지의 서울’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서른 즈음에 들어선 중국의 전형적인 Z세대다. 중국 Z세대는 흔히 1995~2009년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을 가리켜 한때 중국 내 소셜미디어에서는 ‘허우랑’(后浪·뒷물결)이란 별칭을 쓰기도 했다. 가장 높은 연령은 2025년 만 서른이 됐다. 이들을 보통 ‘90후 세대’라고 부르지만 1995년 이후 중국 인터넷과 스마트폰, 각종 소셜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자라난, 완전한 디지털 세대라는 의미로 1990년대 초반 세대와 구분하기 위해 Z세대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90후 세대와 Z세대를 묶어서 MZ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Z세대 중 비교적 빨리 결혼한 사람은 벌써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유치원에 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Z세대는 최근 들어 중국에서 유행하는 사회적 용어인 ‘탕핑’(躺平·드러눕는다는 뜻으로 과도한 경쟁과 압박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의미)과 ‘네이쥐안’(内卷·무한경쟁) 분위기 속에 성장한 세대다.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더 이상 (높은 가격으로 인해) 부모 세대처럼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없다. 극심한 경쟁사회 한복판에 내던져지지만, 일터에서는 ‘성과가 없으면’ 바로 기계의 부품처럼 교체되거나 버려지는 존재가 된다.
어릴 때부터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고 또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잉신도 대학을 졸업하고 정글 같은 취업시장과 직장세계를 경험한 다음에야 자신이 상상하고 꿈꾸던 ‘서사에서 깨어났다’. 항상 ‘최고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내면화된 신념 아래 살아왔던 잉신은 원하던 명문대 입학에는 실패했으나,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서 10개월의 인턴 기간 모든 영혼을 갈아넣으며 일했다. 노력은 반드시 최상의 보상을 가져다준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종 선발에서 탈락했다. 그다음 들어간 회사에서도 끝내는 ‘성과 미달’로 해고당하는 경험을 했다. 10년 이상을 치열한 경쟁 교육 시스템에서 어렵게 승자로 살아남아 이제야 뭔가 해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가본 세상에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런 일련의 낙오자 경험을 하면서 잉신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믿었던 사회적 성공 서사에서 탈락했다고 느꼈다. 마치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힘겹게 버티다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는 것과도 같다.
2024년 여름, 잉신은 중국에서 유명한 사회인류학자인 샹뱌오(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 소장) 교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신이 겪은 취업시장과 직장에서의 좌절, 자신과 또래 청년들이 처해 있는 비슷한 삶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샹뱌오 교수가 말했던 ‘자기 자신을 방법으로 삼는 것’, 그중에서도 ‘(성공이라는) 서사에서 깨어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잉신과 샹뱌오 교수는 잉신이 보낸 편지 내용을 토대로 1시간30분 정도 화상을 통해 중국 Z세대가 경험하는 ‘노력의 배신’과 공통의 불안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잉신은 이 대담 내용을 자신이 운용하는 팟캐스트에 편집해 올렸다. 그러자 수많은 청년이 댓글로 자신들의 경험담과 고민을 공유했고 자신도 샹뱌오 교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중국의 사회인류학자 샹뱌오(왼쪽)가 좌절감을 겪고 있는 청년 잉신과 대화하는 모습. 텐센트 뉴스 영상 갈무리


자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세대
잉신은 이들이 쓴 편지 51통을 모아 샹뱌오 교수에게 보냈고, 그 뒤 이들은 화상 원탁회의를 통해 샹뱌오 교수와 집단토론을 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현실에 대한 통제 불가능함과 그로 인한 인생의 무력감, 불안감을 이야기했다. 이 화상 원탁회의에 참석했던 청년 샤오쥔은 2018년 대학 졸업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좌절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남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한다면, 나만 새로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과연 내 존재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샹뱌오 교수는 이들이 청년들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에 ‘포획’돼 있고, 이 교육 시스템이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성공해야 한다’는 서사를 주입한다고 했다. 성공만을 전제로 하는 ‘서사’를 수용할 때는 조금만 실패하거나 낙오해도 삶 전체가 무너져내린다. 그래서 비슷한 시스템과 서사를 강요당하는 동아시아의 중고등학생과 청년들 사이에 자살과 불안, 우울이 병적으로 유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요된 서사에서 깨어나려면 시스템과 자신 사이에 ‘간격’, 즉 거리두기 혹은 빈틈을 만들고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간격’과 ‘작은 세계’란 예를 들면, 좋아하는 서점에 가서 쉬는 동안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는 것, 주변 사람들과의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돈 버는 일이나 성과 위주의 일 외에 다른 의미 있는 활동이나 대화를 해보는 것 등이다. 샹뱌오는 이들에게 말한다. “조금은 멈춰 서서, 서사에서 비켜나보라.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라고. 그러면 ‘미지의 서울’ 속 미지와 미래가 그랬듯이,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성찰이 조금씩 생겨날 것이라고.
중국어로 글을 쓰는 일본인 작가 요시 시노부가 쓴 책 ‘남들과 다르게 사는 법’(格外的活法)은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주제도 시스템이 강요하는 성공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학을 나와 일본 최대 서점에서 인정받는 직원으로 승승장구하며 일하다가 지금은 오키나와에서 5.5㎡의 초소형 중고서점 사장이 된 ‘우라라서점’의 우다 도모코, 코미디언이자 쓰레기 수거원인 다키자와 슈이치, 회사가 파산하면서 50대에 실업자가 되어 배달원으로 일하다가 우연히 홀몸 노인을 찍는 사진작가가 된 후쿠시마 준시 등 사회 주류 ‘서사에서 벗어난’ 비주류 인생 12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독자는 이런 평을 남겼다.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너만의 질문을 가져도 된다’고 속삭인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신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묻기 시작했다.” 이 책이 중국 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도 바로 잉신과 그 또래 세대, 그리고 샹뱌오 교수가 나눴던 질문과 응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서사에서 벗어나라.”
답은 없지만, 너만의 질문을 가져라
퍼즐을 맞추면서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불안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아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한 조각씩 맞추다보면 언젠가는 너만의 멋진 인생 퍼즐도 맞추게 될 거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으니’ 너무 불안해하거나 쫄지 말거라.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본문에 나오는 잉신과 샹뱌오 교수 이야기는 ‘소후닷컴 6월13일치’ 관련 기사 내용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