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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요?”
고교 시절 불교 신자가 된 성태용 청명문화재단(이하 재단) 이사장이 지인들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불자들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불국토는 어떤 세상인가요?”로 바뀐다.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수행을 하더라도 해야죠. 불자들이 현실에서 이런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불국토가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자기 마음만 편하자고 수행하면 그건 최면술이나 마찬가지죠. 올바른 마음 상태를 이루려는 명상도 세상을 바꾸려는 힘으로 역동적으로 순환해야 합니다. 이는 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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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지혜로운 삶을 위한 동양사상 강의-인도와 중국의 사상에서 인간의 길을 묻다’(북튜브)를 펴냈다. 2006년 겨울 ‘철학아카데미’에서 ‘동양사상의 높은 봉우리들’이란 이름으로 강의한 내용을 보완한 책이다. 그의 다른 책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2022)나 ‘지금, 여기에서 깨닫는 유마경 강의’(2023)도 대중 강연이나 신문 연재를 주식챠트공부
보완해 냈다. 2000년에는 교육방송에서 도올 김용옥에 이어 ‘성태용의 주역과 21세기’라는 이름으로 48회 연속 강의도 펼쳤다.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정약용 사상을 전공하고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1983년부터 2017년까지 재임한 성 이사장은 올해로 6년째 재단을 이끌고 있다. 재단은 한학과 금석학의 대가이자 실천적 지식인 청명 임창동화약품 주식
순(1914~99) 선생이 민족문화 계승과 통일·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1998년 설립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재단 사무실에서 성 이사장을 만났다.



성 이사장의 최근작.


‘학생의 피현대아이티 주식
에 보답하라’. 1960년 4·19 교수 시위단이 들고 나선 플래카드 문구다. 청명이 직접 썼다. 십대 때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했을 뿐 공식 학력이 없는 청명은 빼어난 한학 실력으로 1954년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지만 8년 뒤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4·19 시위에 앞장서고 통일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게 해직의 빌미였다. 청명은 1964년 1우량주투자
차 인혁당 사건에도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청명은 해직 뒤 호구지책으로 태동고전연구소를 세워 한학 교육에 나섰다. 연구소 등에서 그와 사제의 연을 맺은 대학교수급 학자만 해도 강만길, 안병직, 정옥자, 이광호, 박한제, 한홍구 등 수백명이다. 청명은 생의 마지막에도 집을 포함해 재산 대부분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재단 설립에 기부해 ‘삶의 모범’을 보였다.
성 이사장은 연구소가 기업 지원을 받아 처음 5년제로 운영한 한학자 양성 장학생 연수 과정의 1기 졸업생이다. 청명이 재단 설립 추진을 그와 고 유초하 교수에게 맡겼을 정도로 스승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애제자이다.



청명 임창순. 한겨레 자료사진


대전고 다닐 때 집에 있던 송나라 시문집 ‘고문진보’의 글이 멋있어 중국 문인 이태백과 도연명, 유종원의 시 수십 수를 외우면서 한문과 익숙해졌다는 성 이사장은 “연구소 공부 때도 사서삼경 등 동양 고전을 무식하게 외웠다”고 했다. “한문도 어학이잖아요. 외우면 문장 구조가 싹 들어옵니다. 그 뒤엔 다른 글을 봐도 의미 파악이 쉽죠.” 그는 장학생으로 선발된 사람들 가운데 여러 사람이 외우기에 어려움을 겪어 중도 탈락했다고 전했다.
그가 이번에 낸 책을 보면 청명의 애제자로서 갈고 닦은 한학과 고교 시절부터 불도로서 관심을 갖고 익힌 불교 공부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도 고대 사상부터 시작해 불교, 공자와 맹자·순자 등 유가 사상, 노장 사상, 성리학 등의 연원과 계승이 가지런하게 풀려나온다.
그는 책에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동양 사상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만 해방 이후 폭포수처럼 쏟아진 서양 문화에 밀려 동양 사상이 반강제로 단절되어 그 본뜻은 사라지고 파편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유교를 예로 들었다. “유학의 관심은 대체로 현실적이고 실천적이었지만 지금은 충·효의 관념만 남았어요. 유학은 학문을 통해 인격을 완성하고 좋은 세계를 이루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벼슬이 필수였죠. 공자와 묵가의 비조인 묵자의 삶을 두고 ‘공석불가난·묵돌부득검’이란 말까지 있었어요. 공자가 앉은 자리는 따뜻해질 새가 없고 묵자가 머무른 집 부뚜막은 검댕 낄 사이가 없다는 거죠. 두 사람 다 좋은 세상을 이루려,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숨 가쁘게 돌아다녔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 유교를 보면 좋은 세상을 이루겠다는 건 빠지고 인격 수양만 남았어요.”
그 생각에 인격 수양과 좋은 세상 만들기는 따로 갈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과 어떤 세상에 살고 싶으냐는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자유와 경쟁이 강조되는 자본주의와 평등 위주인 사회주의의 이상적 인간형이 어떻게 같겠어요.”
한학 대가이자 실천적인 지식인 청명 임창순에게 5년 한학 배워 교육방송에서 48회 주역 강의 최근 ‘…동양사상 강의’ 출간
“자기만 편한 수행은 최면 불과 세상 바꾸려는 힘으로 순환돼야 유·불, 자기 집단에만 웅크리면 안 돼 서로 배척하는 게 양극화의 출발”
그는 기원전 6세기 불교의 탄생을 두고도 “인류 지성사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혁명적 가르침이었다”고 짚었다. “인류 종교에서 처음으로 관념에서 창출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근본 종지로 삼은 종교가 바로 불교”라는 것이다. “붓다는 한번도 자신을 믿으라 하지 않고 ‘눈 있는 자 와서 보라’고 했어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중시하는 게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죠. 이런 진보성 때문에 불교는 태동 초기 도시 중심으로 세를 확장한 것 같아요.”
그는 동양 사상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파편만 남은 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양극화로 이어진다고도 했다. “불교와 유교가 이상적인 세계를 놓고 서로 다투고 토론하는, 그런 열린 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자기 집단 안에서만 웅크리면 안 됩니다. 닫아 놓고 서로 배척하는 게 양극화의 출발이죠.”
그는 신유학인 주자학도 사상을 통해 세상을 다시 조직하겠다는 이념이 강했으나 동양적 사회 구조가 깨지면서 이런 사상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 유림을 향해 이런 말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유림은 동성동본 혼인이나 호주제 폐지 반대 이런 데만 주로 나오는데요. 저는 살아있는 유학이 되려면 좀더 현실 참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봐요. 예컨대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나온 지방자치제 시행에 유림이 적극 힘을 보탰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정책 연구 등의 방법으로요. 사실 지방자치로 인구 이동이 줄고 향토애가 살아나면 인간적 유대와 인격적 감화력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 이념을 펴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거든요.”
그는 현재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하는 데도 동양 사상의 역할이 있으리라고 봤다. “지금 자본주의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의 수십 배를 소모하고 있어요. 이런 자본주의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어요.”
성 이사장은 이어 자신이 보기에 동서양 사상의 가장 큰 차별점인 욕망의 문제를 꺼내 들었다. “동양 사상은 대체로 욕망을 부정적으로 봐요. 맹자는 심지어 마음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게 욕심이 적은 것이라고 했죠. 유가 중 욕망에 가장 긍정적인 순자조차 욕망의 절제를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서양에서 나온 자본주의는 욕망이라는 에너지원으로 많은 것을 만들고 힘을 극대화합니다. 이런 자본주의 흐름에 대한 근본 비판을 동양 사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동양과 서양의 어떤 사상이 좋고 나쁘다 그런 문제는 아니다”고 전제한 뒤 “일단 동양 사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서양 사상과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을 이었다.



성 이사장(왼쪽 안경 쓴 이)이 스승 청명과 바둑을 두고 있다. 성 이사장 제공


동양 철학자인 성 이사장이 대학 시절부터 빠진 ‘소설’이 있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현장법사가 주인공인 명나라 장편소설 ‘서유기’이다. 그는 6년 전에 ‘어른의 서유기’란 책을 내고 재판까지 찍었다. 그는 이 책에서 ‘좌충우돌 모험담’으로만 알려진 서유기가 동양 사상인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얼마나 유용한 텍스트인지 꼼꼼하고 유쾌 발랄하게 탐색했다. “교수 시절 서유기 내용을 바탕으로 게임과 영화를 만들려고도 했지만 물주를 만나지 못해 이루지 못했어요.”
그가 보기에 서유기에는 ‘반지의 제왕’ 몇개가 나올 정도로 방대한 정신세계가 있다. 그는 “서유기는 인간이 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길을 재밌게 꾸민 이야기”라고 풀었다. “서유기 주인공들은 인간 정신의 한 측면입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 손오공은 어리석음, 저팔계는 탐욕, 사오정은 분노의 에너지를 보입니다. 서유기는 이런 에너지를 전환해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죠. 어리석음과 탐욕, 분노가 훌륭한 인격을 이루는 에너지로 쓰입니다.”
서유기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양극화 극복으로 가는 중요한 관점도 담겼다는 게 성 이사장 생각이다. “양극화의 밑바탕에는 나와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어요. 하지만 서유기를 보면 요괴가 보살의 제자가 되고, 어떤 경우는 천상의 존재가 요괴로 분장하고 나옵니다. 절대악이라는 게 원천적으로 부정됩니다.”



‘서유기 전도사’ 성 이사장은 서유기 독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유기 저자 오승은은 소설 마무리에 손오공은 부처, 사오정은 부처와 동급인 아라한을 만들면서 탐욕을 상징하는 저팔계는 제사 음식 치우는 사자로 만듭니다. 부처보다 급이 낮은 거죠. 욕망을 천시한 오승은 시대의 한계입니다. 저는 서유기 책을 쓰면서 저팔계도 부처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욕망도 훌륭한 인격을 이루는 큰 에너지원이 될 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재단은 설립 이후 계간지 ‘통일시론’을 발간했고 임창순상을 제정해 이이화, 한승헌, 신영복, 김수행, 김금수 선생 등을 시상했다. 하지만 성 이사장은 지난해 수상자 송재소 교수를 끝으로 상 운영을 마감했다. 앞으론 우리 고전을 연구 정리하는 사업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상 줄 사람을 찾기 힘들어 제가 그만하자고 했어요. 국역 지원은 건축이나 음악 같이 희소한 분야이면서 한문이 필요한 곳에 주로 지원하고 있어요. ‘논어혹문’(논어를 문답 형식으로 해설하여 20권 6책으로 간행한 유교서) 번역이 올해 말 마무리되고 ‘원교서결’(서예가 이광사가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법(書法)에 관하여 저술한 이론서) 번역도 진행 중입니다. 청명 선생의 동영상 강의도 올해 말 두 권 나옵니다. 한문 문법이나 고사성어 등을 주제로 방송에서 강의한 내용인데요. 꽤 귀중한 자료입니다.”
한학의 대가이면서 ‘한글전용론자’였고 또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청명이 서당에서 공부한 기간은 13살부터 19살까지 딱 6년이다. 공식 학업 전부다. 이 ‘학력’으로 청명은 어떻게 한학과 금석학의 대가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
성 이사장의 답은 “지극한 사랑”이다. “청명 선생은 탁본 판독의 귀신이었어요. 비가 새로 발견되어 금석학 학자들이 다 모였을 때 늘 먼저 입을 떼는 분이 청명 선생이었다고 해요. 먼저 엉뚱한 소리를 하면 망신을 당하잖아요.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데 늘 청명 선생이 먼저 자기 생각을 밝혔다고 해요. 그러면 다른 분들이 자기 견해를 보탰죠. 제가 선생님에게 ‘탁본을 봐도 글자가 하나도 안 보입니다. 다 까매요’ 하니 그러시더군요. ‘난 서양 음악에 둔해 들어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어떤 사람은 딱 첫머리만 들어도 누구 작품이고 연주 악단까지 다 알더라’고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오래 관심을 기울이면 다 보인다는 거죠. 선생님은 감정의 대가이기도 했는데요. 진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제자에게 ‘그림이 좋으면 먼저 사라’고 하셨어요. 사서 그걸 감상하며 사랑하다 보면 나중에 진짜가 보인다는 거죠. 처음부터 진짜배기 값나가는 걸 구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고요.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성 이사장에게 강연 잘하는 법에 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저는 대학에서도 강의록 없이 가르쳤어요. 교수 초창기에 강의록을 딱 한번 만들었는데요. 학생들 눈을 보며 가르쳐야 하는데 자꾸 강의록으로 눈이 가 수업이 안 되더군요. 그때부터 강의록 작성을 포기하고 가르칠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