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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영외빛 작성일26-01-31 06:04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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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6·25 당시 프랭크 달리 미 중령(왼쪽)과 작년 5월 가평서 열린 참전기념식 참석한 증손자 키튼 댈리 [키튼 댈리 제공]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51년 5월 26일 밤 경기 가평군 홍적리에서 미군 제213야전포병대대는 중공군의 맹렬한 공세에 맞닥뜨렸다. 중공군의 숫자는 4천여 명, 이에 맞선 포대의 병력은 24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이어진 교전에서 중공군 350명이 전사하고 830명이 생포되거나 투항하는 동안 213포병대대는 단 한 명의 전사자 없이 무사히 진지 바다이야기슬롯 를 사수했다.
'가평 기적의 전투'라 불리는 이날의 전투를 이끈 미군 프랭크 댈리 육군 준장(6·25 당시 중령·1913∼1990)은 국가보훈부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6·25 당시 프랭크 댈리 미 중령 [키튼 댈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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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세상을 뜬 댈리 준장이 전쟁 중 한국과 맺은 인연은 70여 년 간격을 두고 다시 이어졌다.
증손자 키튼 댈리(20)가 부산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6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지켜낸 땅에서 선교사로 게임몰 일하는 것은 내게 매우 특별한 의미"라며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군번표를 몸에 지니고 늘 그 의미를 되새긴다"고 말했다.
213포병대대는 시더시티를 비롯한 미 유타주 작은 마을들에서 온 어린 병사 600명으로 이뤄졌다. 댈리 준장의 지휘 아래 모든 대대원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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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 시더시티에 설치된 '가평의 기적' 기념비 [키튼 댈리 제공]
가평군과 시더시티엔 이 전투를 기리는 참전기념비가 나란히 건립돼 있다. 2009년엔 두 도시가 자매결연하기도 했다.
유타주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본산이고, 댈리 준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장과 대대원 대부분도 신자였기 때문에, 유타 주민들에게 가평 전투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키튼 댈리는 "아버지로부터 가평의 기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러한 유산이 매우 자랑스러웠다"며 "선교사로 오기 직전 교회에서 이 얘기를 하자 가평 전투를 알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게 당신 가족 이야기였냐'며 좋은 말들을 해줘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들은 희망에 따라 18∼19세 무렵 선교 활동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임기 선교사로 지원한 것은 키튼 댈리의 결정이었지만, 선교지는 그가 택한 것이 아니었다. 통상 교회 지도자들이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선교지를 배치한다고 한다. 그의 부모와 형을 비롯해 선교사 활동을 한 가족들 중 한국으로 배치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선교사 활동 중인 키튼 댈리 [키튼 댈리 제공]
키튼 댈리는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70년 전 증조할아버지처럼 '댈리'라는 이름으로 이곳 사람들을 섬기러 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쟁의 기억으로 듣던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면서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근면·성실함과 교육열에 늘 감동한다. 명예와 성실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도 사랑한다"며 "증조할아버지도 한국의 놀라운 성취를 보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그가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내게도 자극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5월엔 가평에서 열린 기적의 전투 74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선교사 기간엔 선교지를 떠나거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선교에만 집중하는 게 원칙이지만, 특별히 참석해 가족 대표로 연설했다.
가평 미국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는 키튼 댈리 등 참석자들 [키튼 댈리 제공]
댈리는 "70여 년 전 일을 여전히 감사해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운명처럼 느껴졌다"며 "가평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그는 영어교실, 농사일 돕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종교를 알리고 있다. 생명을 구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마음으로 활동한다는 댈리는 "한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오는 10월 2년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간 후엔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라는 그는 증조할아버지가 이끈 '기적'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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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51년 5월 26일 밤 경기 가평군 홍적리에서 미군 제213야전포병대대는 중공군의 맹렬한 공세에 맞닥뜨렸다. 중공군의 숫자는 4천여 명, 이에 맞선 포대의 병력은 24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이어진 교전에서 중공군 350명이 전사하고 830명이 생포되거나 투항하는 동안 213포병대대는 단 한 명의 전사자 없이 무사히 진지 바다이야기슬롯 를 사수했다.
'가평 기적의 전투'라 불리는 이날의 전투를 이끈 미군 프랭크 댈리 육군 준장(6·25 당시 중령·1913∼1990)은 국가보훈부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6·25 당시 프랭크 댈리 미 중령 [키튼 댈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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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세상을 뜬 댈리 준장이 전쟁 중 한국과 맺은 인연은 70여 년 간격을 두고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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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6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지켜낸 땅에서 선교사로 게임몰 일하는 것은 내게 매우 특별한 의미"라며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군번표를 몸에 지니고 늘 그 의미를 되새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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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 시더시티에 설치된 '가평의 기적' 기념비 [키튼 댈리 제공]
가평군과 시더시티엔 이 전투를 기리는 참전기념비가 나란히 건립돼 있다. 2009년엔 두 도시가 자매결연하기도 했다.
유타주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본산이고, 댈리 준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장과 대대원 대부분도 신자였기 때문에, 유타 주민들에게 가평 전투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키튼 댈리는 "아버지로부터 가평의 기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러한 유산이 매우 자랑스러웠다"며 "선교사로 오기 직전 교회에서 이 얘기를 하자 가평 전투를 알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게 당신 가족 이야기였냐'며 좋은 말들을 해줘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들은 희망에 따라 18∼19세 무렵 선교 활동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임기 선교사로 지원한 것은 키튼 댈리의 결정이었지만, 선교지는 그가 택한 것이 아니었다. 통상 교회 지도자들이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선교지를 배치한다고 한다. 그의 부모와 형을 비롯해 선교사 활동을 한 가족들 중 한국으로 배치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선교사 활동 중인 키튼 댈리 [키튼 댈리 제공]
키튼 댈리는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70년 전 증조할아버지처럼 '댈리'라는 이름으로 이곳 사람들을 섬기러 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쟁의 기억으로 듣던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면서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근면·성실함과 교육열에 늘 감동한다. 명예와 성실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도 사랑한다"며 "증조할아버지도 한국의 놀라운 성취를 보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그가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내게도 자극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5월엔 가평에서 열린 기적의 전투 74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선교사 기간엔 선교지를 떠나거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선교에만 집중하는 게 원칙이지만, 특별히 참석해 가족 대표로 연설했다.
가평 미국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는 키튼 댈리 등 참석자들 [키튼 댈리 제공]
댈리는 "70여 년 전 일을 여전히 감사해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운명처럼 느껴졌다"며 "가평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그는 영어교실, 농사일 돕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종교를 알리고 있다. 생명을 구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을 잇는 마음으로 활동한다는 댈리는 "한국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오는 10월 2년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간 후엔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라는 그는 증조할아버지가 이끈 '기적'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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