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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이 쌓인 눈밭 위로 작은 눈사람이 놓여 있다. ⓒ황정은 제공
2024년 2월18일 발신
선생님, 계시는 곳의 날씨는 오늘 어떤가요.
파주엔 눈이 내렸습니다.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주먹씩 쥐어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기온이 올라 금세 녹아버렸어요. 입춘이 지났으니 어쩌면 올해 마지막 눈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좀 게으르게 살고 싶다고 사이다릴게임 생각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게으를 짬이 나더라도 마음이 어수선해 게으름을 만끽할 새가 없어요. 단편을 두어 개 쓰고 장편을 마무리해야 하고 여름 끝 무렵엔 다시 장편을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도 많아서,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 책이 쌓이곤 하는데 읽는 속도가 책 쌓는 속도를 따라잡질 못해 여기저기 작은 책탑이 솟아 있습니 릴게임갓 다. 다 채우지 못한 원고 지면과 다 읽지 못한 책을 생각할 때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망연하곤 합니다. 요즘엔 그래서 세계문학전집을 모아둔 책꽂이들 앞을 서성이는 날이 많습니다. 언젠가 지금 하는 걱정과 일을 다 끝내면, 이 앞에 드러누워 귤을 까 먹으며 전집을 모조리 읽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입니다. 다른 걱정이나 일정 없이 종일 그것 하나만 바다이야기#릴게임 하며 보내는 하루를, 일주일을, 열흘을 상상해봅니다.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가 그간에 여러 권 더 번역되었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리플리 시리즈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들도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니 그걸 읽는 재미가 얼마나 소소하며 또 크겠습니까. 윌리엄 스타이런과 에블린 워, 모파상을 다시 읽을 수도 있겠고요. 귤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테니 온라인릴게임 아무튼 그 ‘언젠가’는 꼭 조생(早生)과 만감(晩柑) 사이, 겨울에서 봄 사이여야 하겠다, 그런 상상으로 미래를 셈하고 기대하며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엔 베란다에서 자라던 란타나와 오렌지 재스민을 다락방에 들여놓고 지냈습니다. 둘 다 고양이에겐 해로운 식물이지만 이 집엔 이제 계단을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오르내릴 수 있는 고양이가 없어 실내로 들여놓기를 망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고민이 없었나 봅니다. ‘겨울은 춥고 실내가 따뜻하니 식물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우악스러운 마음으로 들였더니 란타나도 재스민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곧 죽을 것처럼 잎을 떨구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도로 무성해졌어요.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자라는 라일락 나무. ⓒ황정은 제공
제 집 베란다에선 라일락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아주 가늘어 바람에 시달리던 어린 나무였는데 몇 번 겨울을 나는 동안 제법 굵어졌어요. 저는 봄부터 가을까지 이 나무가 만들어내는 볕뉘를 책으로 받으며 보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펼친 책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볕뉘를 보려고 나무 곁에 엎드려 지내는 날도 있습니다. 그날그날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를 가만히 보는 동안엔 영원을 느끼고는 합니다. 내 몸으로는 겪은 적도, 겪을 일도 없는 그것을 어렴풋하면서도 벅찬 감(感)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게 쥐고 있던 조바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져요. 내가 이 나무 곁에, 이 빛 속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라는 걸 보고 느낄 때마다 말입니다.
방울토마토는 새들의 몫
선생님, 제 라일락 나무 곁엔 작은 앵두나무도 있고 서부해당나무도 있습니다. 라일락과 앵두나무는 길러달라는 부탁을 받고 맡은 나무들이고, 서부해당나무는 꽃이 너무 궁금해 묘목을 지나치지 못하고 제가 집에 들인 식물입니다.
화분에서 자라는 우리 집 나무들을 ‘나무’라고 부를 때마다 실은 속이 켕깁니다. 숲에 사는 나무들이 땅속 균류를 통해 교감하고 서로를 돌본다는 이야기를 읽은 뒤로 더 그렇습니다. 수잔 시마드가 쓴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김다히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3)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해 전에 보고 만진 어느 식물의 뿌리를 생각했습니다. 분갈이를 하려고 화분에서 빼내고 보니 화분을 빽빽하게 채운 뿌리가 바닥에 깔려 있던 자갈까지 몽땅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땅속에서 자갈은 이렇게 흙이 되는구나, 하고 경이로웠지만 마음껏 뻗지 못해 주먹처럼 안으로 말린 뿌리는 아무래도 제가 저지른 무슨 짓인 것 같아 섬뜩하고 민망했습니다. 나무들이 커갈수록, 나무가 좋아질수록, 화분에서 ‘나무’를 기르는 일은 결국 어디로도 갈 수 없도록 작은 그릇에 그들을 가둬 내가 가지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 나무를 향해 ‘나무’ 하고 말할 때마다 당치 않은 자리에 그들을 두었다고도 느낍니다. 나무를 제게 맡긴 사람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집에선 식물을 밖에서 기를 수가 있으니까” 하는 부탁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무들을 받았는데 그들이 저의 미래 근심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나무 세 그루를 옮겨 심을 땅을 찾아두기, 기회가 있을 때 옮겨 심기. 해마다 갱신되고 수정되는 ‘해야 할 일’ 목록에 빼먹지 않고 적는 일입니다.
그 밖에 베란다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개 채소입니다. 저와 제 동거인은 여름과 가을 내내 베란다에서 채소를 길러 먹습니다. 고추, 가지, 애호박, 완두콩이 있고 깻잎과 차조기, 상추, 고수도 기릅니다. 방울토마토도 해마다 자라는데 그건 새들 몫입니다. 새들이 방울토마토를 먹고 화단에 똥을 싸거나 먹던 걸 던져두고 가기 때문에,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지 않아도 방울토마토는 해마다 나타납니다. 싹을 발견할 때마다 옮겨서 한자리에 모아두면 여름이 시작될 무렵엔 한 아름 넘는 규모의 밭이 됩니다. 베란다 채소 중에 가장 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중에 사람 몫은 없어요. 전부 새들 것입니다.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가지.ⓒ황정은 제공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키운 쌈채소. ⓒ황정은 제공
지난번에 만났을 때 선생님이 선물해준 씨앗들은 한 해 먹을 채소를 심으면서 작년 봄에 심었습니다. 조바심에 조금 일찍 심었더니 너무 추울 때였나 봅니다. 긴산꼬리풀은 아주 작은 싹을 내다가 사라져버렸어요. 하지만 금꿩의다리는 풍부하게 잎을 냈고 길쭉한 배초향도 잔뜩 자라 늦가을까지 보았습니다. 깨꽃을 얼핏 닮은 보라색 꽃을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에게 보내려고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망설이기만 하다가 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해살이 풀이라니 올해에 같거나 다른 자리에서 또 자라겠지요. 이번 봄엔 꼭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어제는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 달을 보았습니다. 거의 보름달이었어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달이 밝으면 한밤에도 그림자가 선명합니다. 그게 아름답고 좋아서, 잠을 단념하고 달이 있는 새벽을 한참 보았습니다.
파주 하늘은 넓어서 달이 잘 보이고 날씨가 다가오는 것도 잘 보입니다. 맑은 날 북쪽에서 다가오는 비구름, 남쪽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눈구름, 구름 아래로 번지는 번개, 서쪽에서 다가오는 안개, 등등 갖은 기상(氣象)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이 동네에 살며 새삼,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파주 하늘은 넓어서,라니 정말 이상한 말이지요? 하늘은 어디나 넓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살던 서울에서도 하늘은 넓었을 텐데, 서울 어디에서도 저는 하늘을 바라보며 넓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고층에서 생활하거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장소에 오래 머물렀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살거나 자주 머물곤 했던 서울 동네에서는 그런 걸 느낀 일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늘 무언가의 틈으로 보이곤 해서, 복잡하고 비좁았지요.
처음 파주로 이사왔을 때 가만히 어딘가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위쪽으로 한 번, 눈썹 위쪽으로 다시 한 번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이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생활공간에서 하늘을 감각했기 때문에 느끼는 현기증이라는 것을 안 적이 있습니다. 파주에 살며 정말 좋았고 여전히 좋은 점이 그것입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늘이라서, 먼 지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큰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면서 여기 지평선도 점차 복잡해지며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커다란 상가 건물이 올라왔고 호텔도 일 년 사이에 두 개나 생겼습니다. 서쪽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가 확장되고 있고 초고층 복합 시설도 건설되고 있어 제가 사는 곳에서 서북 방향으로는 이미 지평선이랄 게 사라졌습니다. 모두 최근 삼 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인구가 부쩍 늘어서인지 지난해 이 동네 호수공원에서 열린 불꽃축제는 그 전년과 다르게 큰 규모였습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불꽃축제를 전년에 이어 다시 연다는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을 보았을 때만 해도 저는 별 감흥이 없었고 다만 새들을 걱정하기는 했습니다. 호수에 사는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가 폭발에 휩쓸리지는 않을지, 폭음만으로도 심장이 멈춰 죽지는 않을지를 말입니다. 그런 걱정을 조금 하다가 그냥 잊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2023년) 가을의 일입니다. 첫 폭음을 듣고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에서 폭발하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빛이 먼저, 소리가 그다음입니다. 불꽃이 터지고 폭음은 그보다 늦게 도착합니다. 하늘이 넓고 가리는 것이 적어서인지 폭음을 담은 진동이 제가 선 자리로 고스란히 밀려왔습니다. 몸이 흔들렸고 발 딛고 선 바닥도 흔들렸습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어디에서 지르는지도 알 수 없는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팬데믹으로 거의 모든 것이 위축되었던 때를 지나 모처럼 돌아온 공동의 축제에 환호하고 그를 반기는 마음들이었습니다. 그를 기뻐하는 마음이 제게도 있었나 봅니다. 불꽃을 반기려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호된 공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10월 밤바다, 세월호의 불꽃놀이
수일 전에 저는 어느 가정집이 등장하는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창문마다 커튼을 내린 거실에서 서너 살 먹어 보이는 아이들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음과 동시에 커튼들이 풀썩 날리고 영상이 뒤흔들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기겁해 뭐라고 외치며 화면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비명이며 다급히 누군가를, 아마도 그들의 보호자일 어른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을 파주 밤하늘에서 뻥뻥 터지며 자자작, 하고 번지는 불꽃을 보고 들으며 저는 그 거실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꽃은 꽃 아닌 섬광이었고, 아름다운 꽃불의 개화를 알리는 폭음은 단지 폭탄 폭음이었습니다. 불꽃놀이를 이름 그대로 놀이 삼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저렇게 넓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는 그런 섬광과 폭발을 도저히 놀이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당장 실내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실내에서 폭음을 들으면 공포가 더할 것 같아 그 자리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결국은 곁에 있던 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덜덜 떨며 불꽃놀이를 등졌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세 번째로 본 하늘 불꽃이었습니다.
2025년 9월27일, 서울 한강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의 한 장면. ⓒ연합뉴스
첫 번째는 2000년, 서울 여의도 한강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의 불꽃이었습니다. 일찌감치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았고 축제가 끝난 뒤엔 이미 사라진 불꽃에 깊이 홀린 채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강서구까지 밤길을 네 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갑자기 그 정도를 걷는 바람에, 그때 동그랗게 뭉친 종아리 근육이 여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얼추 이십사 년 전의 일입니다.
두 번째는 2013년, 인천항에서 출발해 제주항으로 가는 세월호에서 보았습니다. 한밤이 되었을 때 그 배에 탑승한 사람들이 갑판에 모였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배 꽁무니에서 밤바다 위로 쏘아 올린 불꽃이 너무 가깝고 아름다워 깜짝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밤에 많은 순간을 저는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밤과 바다와 사람이 만들어낸 기억입니다. 무대에 오른 음악가의 오카리나 연주를 듣는 동안엔 배를 밝히는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조명도 별도 없어 오로지 달빛뿐인데도 사람들 사이가 놀랍도록 밝았습니다. 달빛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갑판에서 밤바다로 부드럽게 번져가는 오카리나 연주를 들었습니다. 먼 수평선엔 집어등을 밝힌 배들이 떠 있었고요. 그중 한 대가 음악에 이끌린 것처럼 둥실둥실 세월호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갑판 가장자리엔 사람들이 난간에 다가가지 않도록 굵은 밧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밧줄에 붙어 서서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 떨어지겠어요?” 돌아보니 승무원복을 입은 남자가 비죽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고 난간에 바짝 붙어 서는 승객, 위험을 경고해도 듣지 않는 승객이 말입니다.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런 이들을 향한 환멸과 경멸이 느껴졌습니다. 혹은 반복되는 경고로 쌓인 권태나 염세, 냉소였을지도 모르겠고요. 어쨌든 찰나였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바다를 한 번 돌아보는 사이에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위험을 알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면하기는 했지만 저는 그가 두려웠습니다. 그의 경멸, 혹은 권태, 염세, 냉소, 어쩌면 그것 전부의 조합일 수도 있는 그것을 당시에 저는 사람을 향한 적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10월 밤바다에서의 일입니다.
어디에서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자주 그를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요즘 사정이 있어 외출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장소인 백두대간수목원으로 만나러 가겠다는 약속도 여태 지키지 못했지요. 하지만 거기 갈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나선 기분이 되고는 합니다.
조금씩 편지를 쓰는 사이에 보름달은 줄어 하현이 되었다가 초승달을 거쳐 상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또 보겠지요.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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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18일 발신
선생님, 계시는 곳의 날씨는 오늘 어떤가요.
파주엔 눈이 내렸습니다.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주먹씩 쥐어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기온이 올라 금세 녹아버렸어요. 입춘이 지났으니 어쩌면 올해 마지막 눈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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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엔 베란다에서 자라던 란타나와 오렌지 재스민을 다락방에 들여놓고 지냈습니다. 둘 다 고양이에겐 해로운 식물이지만 이 집엔 이제 계단을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오르내릴 수 있는 고양이가 없어 실내로 들여놓기를 망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고민이 없었나 봅니다. ‘겨울은 춥고 실내가 따뜻하니 식물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우악스러운 마음으로 들였더니 란타나도 재스민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곧 죽을 것처럼 잎을 떨구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도로 무성해졌어요.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자라는 라일락 나무. ⓒ황정은 제공
제 집 베란다에선 라일락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아주 가늘어 바람에 시달리던 어린 나무였는데 몇 번 겨울을 나는 동안 제법 굵어졌어요. 저는 봄부터 가을까지 이 나무가 만들어내는 볕뉘를 책으로 받으며 보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펼친 책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볕뉘를 보려고 나무 곁에 엎드려 지내는 날도 있습니다. 그날그날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를 가만히 보는 동안엔 영원을 느끼고는 합니다. 내 몸으로는 겪은 적도, 겪을 일도 없는 그것을 어렴풋하면서도 벅찬 감(感)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게 쥐고 있던 조바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져요. 내가 이 나무 곁에, 이 빛 속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라는 걸 보고 느낄 때마다 말입니다.
방울토마토는 새들의 몫
선생님, 제 라일락 나무 곁엔 작은 앵두나무도 있고 서부해당나무도 있습니다. 라일락과 앵두나무는 길러달라는 부탁을 받고 맡은 나무들이고, 서부해당나무는 꽃이 너무 궁금해 묘목을 지나치지 못하고 제가 집에 들인 식물입니다.
화분에서 자라는 우리 집 나무들을 ‘나무’라고 부를 때마다 실은 속이 켕깁니다. 숲에 사는 나무들이 땅속 균류를 통해 교감하고 서로를 돌본다는 이야기를 읽은 뒤로 더 그렇습니다. 수잔 시마드가 쓴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김다히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3)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해 전에 보고 만진 어느 식물의 뿌리를 생각했습니다. 분갈이를 하려고 화분에서 빼내고 보니 화분을 빽빽하게 채운 뿌리가 바닥에 깔려 있던 자갈까지 몽땅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땅속에서 자갈은 이렇게 흙이 되는구나, 하고 경이로웠지만 마음껏 뻗지 못해 주먹처럼 안으로 말린 뿌리는 아무래도 제가 저지른 무슨 짓인 것 같아 섬뜩하고 민망했습니다. 나무들이 커갈수록, 나무가 좋아질수록, 화분에서 ‘나무’를 기르는 일은 결국 어디로도 갈 수 없도록 작은 그릇에 그들을 가둬 내가 가지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 나무를 향해 ‘나무’ 하고 말할 때마다 당치 않은 자리에 그들을 두었다고도 느낍니다. 나무를 제게 맡긴 사람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집에선 식물을 밖에서 기를 수가 있으니까” 하는 부탁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무들을 받았는데 그들이 저의 미래 근심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나무 세 그루를 옮겨 심을 땅을 찾아두기, 기회가 있을 때 옮겨 심기. 해마다 갱신되고 수정되는 ‘해야 할 일’ 목록에 빼먹지 않고 적는 일입니다.
그 밖에 베란다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개 채소입니다. 저와 제 동거인은 여름과 가을 내내 베란다에서 채소를 길러 먹습니다. 고추, 가지, 애호박, 완두콩이 있고 깻잎과 차조기, 상추, 고수도 기릅니다. 방울토마토도 해마다 자라는데 그건 새들 몫입니다. 새들이 방울토마토를 먹고 화단에 똥을 싸거나 먹던 걸 던져두고 가기 때문에,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지 않아도 방울토마토는 해마다 나타납니다. 싹을 발견할 때마다 옮겨서 한자리에 모아두면 여름이 시작될 무렵엔 한 아름 넘는 규모의 밭이 됩니다. 베란다 채소 중에 가장 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중에 사람 몫은 없어요. 전부 새들 것입니다.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가지.ⓒ황정은 제공
황정은 소설가의 집 베란다에서 키운 쌈채소. ⓒ황정은 제공
지난번에 만났을 때 선생님이 선물해준 씨앗들은 한 해 먹을 채소를 심으면서 작년 봄에 심었습니다. 조바심에 조금 일찍 심었더니 너무 추울 때였나 봅니다. 긴산꼬리풀은 아주 작은 싹을 내다가 사라져버렸어요. 하지만 금꿩의다리는 풍부하게 잎을 냈고 길쭉한 배초향도 잔뜩 자라 늦가을까지 보았습니다. 깨꽃을 얼핏 닮은 보라색 꽃을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에게 보내려고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망설이기만 하다가 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해살이 풀이라니 올해에 같거나 다른 자리에서 또 자라겠지요. 이번 봄엔 꼭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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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하늘은 넓어서 달이 잘 보이고 날씨가 다가오는 것도 잘 보입니다. 맑은 날 북쪽에서 다가오는 비구름, 남쪽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눈구름, 구름 아래로 번지는 번개, 서쪽에서 다가오는 안개, 등등 갖은 기상(氣象)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이 동네에 살며 새삼,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파주 하늘은 넓어서,라니 정말 이상한 말이지요? 하늘은 어디나 넓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살던 서울에서도 하늘은 넓었을 텐데, 서울 어디에서도 저는 하늘을 바라보며 넓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고층에서 생활하거나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장소에 오래 머물렀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살거나 자주 머물곤 했던 서울 동네에서는 그런 걸 느낀 일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늘 무언가의 틈으로 보이곤 해서, 복잡하고 비좁았지요.
처음 파주로 이사왔을 때 가만히 어딘가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위쪽으로 한 번, 눈썹 위쪽으로 다시 한 번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이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생활공간에서 하늘을 감각했기 때문에 느끼는 현기증이라는 것을 안 적이 있습니다. 파주에 살며 정말 좋았고 여전히 좋은 점이 그것입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늘이라서, 먼 지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큰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면서 여기 지평선도 점차 복잡해지며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커다란 상가 건물이 올라왔고 호텔도 일 년 사이에 두 개나 생겼습니다. 서쪽 방향으로 아파트 단지가 확장되고 있고 초고층 복합 시설도 건설되고 있어 제가 사는 곳에서 서북 방향으로는 이미 지평선이랄 게 사라졌습니다. 모두 최근 삼 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인구가 부쩍 늘어서인지 지난해 이 동네 호수공원에서 열린 불꽃축제는 그 전년과 다르게 큰 규모였습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불꽃축제를 전년에 이어 다시 연다는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을 보았을 때만 해도 저는 별 감흥이 없었고 다만 새들을 걱정하기는 했습니다. 호수에 사는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가 폭발에 휩쓸리지는 않을지, 폭음만으로도 심장이 멈춰 죽지는 않을지를 말입니다. 그런 걱정을 조금 하다가 그냥 잊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2023년) 가을의 일입니다. 첫 폭음을 듣고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에서 폭발하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빛이 먼저, 소리가 그다음입니다. 불꽃이 터지고 폭음은 그보다 늦게 도착합니다. 하늘이 넓고 가리는 것이 적어서인지 폭음을 담은 진동이 제가 선 자리로 고스란히 밀려왔습니다. 몸이 흔들렸고 발 딛고 선 바닥도 흔들렸습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어디에서 지르는지도 알 수 없는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팬데믹으로 거의 모든 것이 위축되었던 때를 지나 모처럼 돌아온 공동의 축제에 환호하고 그를 반기는 마음들이었습니다. 그를 기뻐하는 마음이 제게도 있었나 봅니다. 불꽃을 반기려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호된 공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10월 밤바다, 세월호의 불꽃놀이
수일 전에 저는 어느 가정집이 등장하는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창문마다 커튼을 내린 거실에서 서너 살 먹어 보이는 아이들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음과 동시에 커튼들이 풀썩 날리고 영상이 뒤흔들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기겁해 뭐라고 외치며 화면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비명이며 다급히 누군가를, 아마도 그들의 보호자일 어른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을 파주 밤하늘에서 뻥뻥 터지며 자자작, 하고 번지는 불꽃을 보고 들으며 저는 그 거실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꽃은 꽃 아닌 섬광이었고, 아름다운 꽃불의 개화를 알리는 폭음은 단지 폭탄 폭음이었습니다. 불꽃놀이를 이름 그대로 놀이 삼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저렇게 넓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는 그런 섬광과 폭발을 도저히 놀이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당장 실내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실내에서 폭음을 들으면 공포가 더할 것 같아 그 자리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결국은 곁에 있던 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덜덜 떨며 불꽃놀이를 등졌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세 번째로 본 하늘 불꽃이었습니다.
2025년 9월27일, 서울 한강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의 한 장면. ⓒ연합뉴스
첫 번째는 2000년, 서울 여의도 한강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의 불꽃이었습니다. 일찌감치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았고 축제가 끝난 뒤엔 이미 사라진 불꽃에 깊이 홀린 채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강서구까지 밤길을 네 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갑자기 그 정도를 걷는 바람에, 그때 동그랗게 뭉친 종아리 근육이 여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요. 얼추 이십사 년 전의 일입니다.
두 번째는 2013년, 인천항에서 출발해 제주항으로 가는 세월호에서 보았습니다. 한밤이 되었을 때 그 배에 탑승한 사람들이 갑판에 모였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배 꽁무니에서 밤바다 위로 쏘아 올린 불꽃이 너무 가깝고 아름다워 깜짝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밤에 많은 순간을 저는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밤과 바다와 사람이 만들어낸 기억입니다. 무대에 오른 음악가의 오카리나 연주를 듣는 동안엔 배를 밝히는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조명도 별도 없어 오로지 달빛뿐인데도 사람들 사이가 놀랍도록 밝았습니다. 달빛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갑판에서 밤바다로 부드럽게 번져가는 오카리나 연주를 들었습니다. 먼 수평선엔 집어등을 밝힌 배들이 떠 있었고요. 그중 한 대가 음악에 이끌린 것처럼 둥실둥실 세월호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갑판 가장자리엔 사람들이 난간에 다가가지 않도록 굵은 밧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밧줄에 붙어 서서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 떨어지겠어요?” 돌아보니 승무원복을 입은 남자가 비죽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고 난간에 바짝 붙어 서는 승객, 위험을 경고해도 듣지 않는 승객이 말입니다.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런 이들을 향한 환멸과 경멸이 느껴졌습니다. 혹은 반복되는 경고로 쌓인 권태나 염세, 냉소였을지도 모르겠고요. 어쨌든 찰나였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바다를 한 번 돌아보는 사이에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위험을 알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면하기는 했지만 저는 그가 두려웠습니다. 그의 경멸, 혹은 권태, 염세, 냉소, 어쩌면 그것 전부의 조합일 수도 있는 그것을 당시에 저는 사람을 향한 적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을 잊지 못합니다.
10월 밤바다에서의 일입니다.
어디에서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자주 그를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요즘 사정이 있어 외출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장소인 백두대간수목원으로 만나러 가겠다는 약속도 여태 지키지 못했지요. 하지만 거기 갈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나선 기분이 되고는 합니다.
조금씩 편지를 쓰는 사이에 보름달은 줄어 하현이 되었다가 초승달을 거쳐 상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또 보겠지요.
파주에서, 정은
황정은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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