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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 표지. [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2023년 8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전기 완질 ‘시왕도’ 두 점 중 하나가 일본의 한 경매 사이트에 등장했다. 긴급 매입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경매에서 시왕도를 낙찰받았다. 국외재단은 지난해 10월엔 일본인 소장자가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최초로 존재를 확인한 고려사경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도 매입했다. 이 사효성 주식
경은 보물로 지정된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와 동일한 화엄종 근본 경전이다.
일본으로 반출됐던 대방광불화엄경과 시왕도가 천신만고 끝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환수한 문화유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고려사경과 시왕도주당순이익
는 고려와 조선 전기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 발원문. [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1334년 제작된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감색 종이에사께다전법
금가루를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로 필사한 고려사경이다.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적는 작업이나 그러한 경전을 뜻한다. 당초 불교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뒤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공덕을 쌓는 방편으로 여겨졌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사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s119
.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쓰였지만,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인 실차난타(652∼710)가 한문으로 옮겼다. 한역본으로는 진본·주본·정원본 등이 있는데, 이번에 환수된 대방광불화엄경의 경우 주본 80권 중 제22권을 옮겨 적은 것이다. 화엄경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佛·화엄경의 주불로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형상화한 광명의 부처)이 도솔천궁으로 올라가는 과정vip클럽
이 기록돼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가로로 쭉 펼쳤을 때 10.9에 달하며, 불교 예술로서 그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표지에는 넝쿨무늬가 감싼 다섯 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돼 있다. 발원문에는 1334년 정독만달아(鄭禿滿達兒·1290~?)가 부모님과 황제 등의 은혜에 감사하며 화엄경 81권 등을 사성(寫成·사경 작업의 완성)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독만달아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로 가서 관직에 오른 환관이다.
경전 내용을 상징적으로 풀어낸 다섯 폭의 변상도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 상단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여러 보살이 배치돼 있고, 나머지 화면에는 비로자나불이 보리수 아래,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등을 오가며 설법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정교하고 능숙한 선의 묘사를 통해 전문 사경승의 높은 필력을 엿볼 수 있다고 국가유산청 측은 설명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현재 국보 2건, 보물 10건이 지정돼 있다. 이번 유물은 보물로 지정된 코리아나화장박물관 소장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의 발원문과 내용이 일치해, 같은 화엄경임을 알 수 있다.



총 10폭으로 된 시왕도. [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번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시왕도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그림으로, 일본인 수집가 이리에 다케오가 자신의 소장품 740여 점을 기록한 ‘유현재선한국고서화도록(幽玄齋選韓國古書畵圖錄)’에서 소개된 적이 있어 일찍이 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이리에는 일본 교토에서 ‘이조당’이라는 고미술점을 운영했다.
각 폭의 화기에 제작 시기가 적혀 있진 않지만, 시주자들의 이름이 있어 민간이 발원해 만든 것으로 연구된다.
가로 66㎝, 세로 147㎝ 크기의 총 10폭으로 구성된 시왕도(十王圖)는 화폭마다 저승에서 망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시왕이 그려져 있다. 각 폭 상단에는 시왕들의 재판 주관 장면을 크게 부각한 한편, 하단에는 옥졸에게 체벌당하는 망자들의 처참한 광경이 비교적 작게 묘사돼 있다.



제5염라왕도가 그려진 시왕도 이미지 확대. 염라왕이 착용한 면류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 [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6변성왕도가 그려진 시왕도 이미지 확대. 지옥 장면에 연화화생이 그려진 것을 발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특히 제5염라왕도와 제6변성왕도가 그려진 화폭은 일월문이나 금강경책이 그려진 고려 후기 시왕도의 도상과는 구별된다. 이번 환수본에는 염라왕이 직사각형 판에 구슬을 꿰어 늘어뜨린 형태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 관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민간신앙에서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염라왕이 죽음을 다스리는 시왕임을 드러내며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변성왕도에서는 연꽃이 만물을 화생해 다시 탄생시킨다는 연화화생(華化生)이 지옥 장면에 등장하는데, 이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이는 지옥에서도 죗값을 치르고 뉘우치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온 유물들의 정확한 해외 반출 경로는 알려진 바 없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지난해 10월 고미술을 거래하던 일본인 소장자가 재단에 먼저 연락해, 이후 조사 및 협상을 거쳐 지난 4월 국내로 들여왔다. 일본인 소장자는 지난 2023년 일본의 한 경매에서 유물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시왕도는 재단이 지난 2023년 8월 일본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해 낙찰에 성공했다. 소장자는 약 20년 전 재일교포였던 부모님으로부터 한국 유물을 다수 상속받았다고 알려졌다.